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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6일, 토요일
봄기운이 느껴집니다.
두툼한 옷을 뚫고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아닙다.
매서운 겨울 바람속에 봄기운이 조금 섞여 있고,
그 바람이 지나간 뒤를 봄바람이 따라옵니다.
추위로 얼었던 흙덩이가 봄바람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지난 가을 새롭게 만든 임도 주변의 흙이 풀려 조금씩 흘러 내립니다.
자연의 긴장과 풀림이 흙을 부드럽게 하고 흙벽의 모습을 바꾸어 나갑니다.
자연의 일부인 사람 또한 똑같습니다.
일과 사람들과의 부대낌과 삶 자체로부터 오는 긴장이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될 초긴장의 상태로 되기도 합니다.
이런 긴장이 자연스레 해소되는 경우도 있지만,
팽팽한 긴장이 허무하고 공허한 것으로 귀결되는 때가 많습니다.
후자의 경우를 낙담이라 하고 절망이라 고 싶은데,
어떤 사람은 실존적 공허라 부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팍팍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죠.
이 공허함을 메꾸기 위해 사람들은 감각적인 것에 몰두하기도 하고 탐닉합니다.
그렇지만 땅으로부터 온 유한한 인간 스스로
이것이 일시적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비참함이죠.
물론 이 비참함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인간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표지라고 말하지만요..
겨울 바람과 봄바람이 섞이고, 긴장과 풀림이 함께 하고,
열정과 낙담이 함께 하는 시간속에서
그저 그렇게 우리의 삶이 흘러가게 하는 것.
아주 쉬운 것이지만 살아내기 힘든 거죠.
그런 축복이 함께 하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