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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모임생활글/생활 속에서 2019. 1. 31. 17:03
1월 31일, 목요일
영서 지방에서 사는 사람들은 대관령 동쪽을 모두 영동지방으로 부르지만, 이쪽에서 살고 있는 우리(사제)들은 영동과 영북으로 구분해서 사용한다. 영동은 강릉을 중심으로 하며 주문진까지를 말하고, 주문진에서 통일전망대까지를 영북지역이라고 부른다.
어제 영북 지역 사제단 모임이 있었다. 교구 사제들의 모임이지만 이쪽 지역에 살고 있는 수도회 사제들도 참석 해오고 있었다. 각 본당과 수도회에서 하고 있는 일들을 공유하고 협력해야 할 일이 있으면 서로 돕기 위해서이다. 한 달에 한 번 모여 식사를 함께 하면서 친교를 나누기도 한다.
어제 모임은 거진 본당에서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멀었다.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얼마 전까지 해안에 있었던 철조망이 없어져 겨울 바다의 시원함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검푸른 바다에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몰려오는 피도를 고래 이빨이라고 표현한 말을 떠올렸다.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바다를 보면서 바닷가의 크고 작은 마을을 보면서 원산을 거쳐 중국과 러시아까지 올라가는 여행을 상상하기도 했다. 여름 휴가철을 제외하고는 도로가 붐빌 일은 그리 많이 않을 것 같았다. 거진은 도시라고 할 수 없고 큰 마을이라고 하면 좋을 곳이었다. 정시에 도착했지만 모임은 조금 전에 시작된 것 같았다.
예상했던 대로 각 본당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협력하고 협조해야 할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 영북 지역 사제단 이름으로 시의회에 의견을 내야 할 사안이 있었지만,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분들의 의견 때문에 취소된 것도 있었다. 시골에서 사목하는 분들답게 소박한 말투가 마음에 와 닿았으며, 서로를 존중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여서 어색하지 않게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동반자 회원 댁을 방문했다. 교사로 일하면서 바닷가에서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 분들이었다. 산속에 있는 집이 편안함을 준다면 바닷가에 있는 집은 시원함과 계절에 관계없이 낭만적이 아닐까라는 생각들 했다. 그분들이 살고 있는 바로 옆에 카페가 있었다. 속초보다 윗지역이어서 철조망이 그대로 설치되어 있는 바닷가에 인접해 있었다. 바닷가에 있는 철조망이 흉물스럽게 여겨지지 않고, 낯설게 여겨져 이국적인 묘한 분위기를 일으키는 카페였다.
카페의 내외부 장식 컨셉은 '거칠음과 야생적과 단순함'인 것 같았다. 황갈색으로 녹이 슨 철판과 공장에서 그대로 가져와 사용한 듯한 시멘트 벽돌로 건물 외부를 장식했고, 철근과 건축공사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판자를 사용한 탁자를 배치했다. 가공되지 않은 거친 재료들을 사용하면서 이것들이 공사 현장처럼 보이게 않게 하고 멋스럽게 보이기 위해서 많은 신경을 썼을 것이다. 커피 맛도 그런대로 좋았고, 카페 바로 옆 빵공장에서 만든 빵맛도 좋았다. 카페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겨울 바다와 카페 내외부의 거칠음이 삭막하게 여겨지지 않고 오히려 편하게 여겨지는 묘한 곳이었다. 교실 두 배 정도 넓이인 카페 좌석의 절반 이상에 손님들이 있었다. 주말에는 카페 앞에 자동차를 주차할 공간이 없을 정도라니. 돈이 돈을 번다고 하지만, 돈 벌기 위한 노력과 아이디어와 사람들 사이의 흐름을 읽는 것이 안된다면 돈이 많고 투자를 많이 해도 돈을 불려나갈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아침부터 시야를 흐리게 했던 미세먼지를 마셔가며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