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서시)
*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소년)
*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조그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내려 덮어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나서면 일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눈오는 지도)
*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 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돌아와 보는 밤)
*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된다. (병원)
*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새로운 길)
*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아 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또 태초의 아침)
*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무서운 시간)
*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십자가)
*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바람이 불어)
*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감고 가거라. (눈감고 간다)
*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가자 가자 쫒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또 다른 고향)
*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