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쓴다는 것은 행동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또한 현실 앞에서 느낀 어려움에 대응하는 다른 방법, 의사소통의 다른 방식, 거리, 성찰의 시간을 선택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11)
* 작가의 펜에 반드시 있어야 할 미덕이 있다면, 그 미덕은 아무리 사소한 낙서일지라도 결코 강자를 칭송하는 데에 봉사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18)
* 왜 글을 쓰는 것입니까? 이미 얼마 전부터 작가는 더 이상 자신이 세상을 바꿀 것이며, 자신의 단편과 장편으로 보다 나은 삶의 모델을 낳겠다는 자만심을 버렸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증인이 되기를 원할 뿐입니다. (19)
* 작가는 몸으로 저항하며 스스로 원하지 않았음에도 증인이 될 때, 그때야말로 가장 뛰어난 증인이 됩니다. 행동하는 것, 작가가 무엇보다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증언하기보다는 행동하는 것. 자신의 말, 자신의 발상, 그리고 자신의 꿈이 현실에 개입해 정신과 마음을 변화시키고, 보다 나은 세상을 열기 위해 글을 쓰고, 상상하고,꿈을 꾸는 것입니다. (20)
* 고독은 작가의 몫입니다. 고독은 언제나 그래왔습니다. 작가에게 고통은 상냥하며, 작가는 고독과 함께 할 때 행복의 진수를 발견합니다. 작가는 모두를 위해, 모든 시대를 위해 말하고자 했으나, 지금 그는 자기 방에 갇혀 은밀한 빛을 조금씩 뿌려주는 전등갓 아래, 텅 빈 페이지의 지나치게 하얀 거울 앞에 앉아 있습니다. (21)
* 문학은 복합적이고 어려운 길이며, 바이런이나 빅토르 위고의 시대보다 오늘날 더욱더 필요한 것입니다. 우선 문학은 언어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작가, 시인, 소설가는 창조자입니다. 이는 그들이 언어를 창조한다는 뜻이 아니라, 미와 사고와 이미지를 창조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는 말입니다. 언어는 인류의 가장 특별한 발명품이자 모든 것에 선행하고 모든 것을 공유하는 발명품입니다. 언어가 없다면 학문도, 기술도, 법률도, 사랑도 없습니다. 어느 면에서작가는 언어의 파수꾼입니다. 작가가 소설, 시, 희곡을 쓸 때 그들은 언어를 살리는 것입니다. 작가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언어에 봉사합니다. 언어란 작가에 의해, 그리고 작가를 통해 살고, 또 작가가 사는 시대의 사회적 혹은 경제적 변모를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23)
* 문학은 출판이라는 멋진 직업과 무척 가까이 닿아 있습니다. 문학은 우리 시대의 남녀들에게 있어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그들의 발언권을 요구하며, 그들의 다양한 말을 사람들이 듣도록 하는 수단 가운데 하나입니다. 무엇보다 문화는 독자, 즉 출판인의 책입니니다. 문화란 인류 모두의 공동 자산입니다. 이것이 사실일 되기 위해서는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동일한 수단이 모두에게 주어져야 합니다. 시대에 뒤떨어지긴 했으나, 이를 위한 가장 이상적인 도구가 바로 책입니다. 책은 실질적이고, 손으로 다룰 수 있으며, 경제적입니다. 어던 특정한 기술적 업적을 요구하지도 않고, 어떤 기후에도 별 문제 없이 보존할 수 있습니다. (24-26)
(<아버지의 여행 가방>, J.M.G 르 클레지오 외, 문학동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