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간델스하임의 수녀원장 아델라이스)도 젊은 날에 백합 같은 곱슬곱슬한 언어로 시편을 시도했었지만, 그 언어에서 나는 객일 뿐이었습니다. 떠돌이 나그네의 어설픈 사투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나 이제 늙었으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매일 눈이 흐려집니다. 노년기가 눈 내리듯 몸을 휘감을 때, 모든 말이 침묵에서 올라와 아름다워집니다. 침묵에서 올라오는 말들은 겉보기에 흔들리지 않는 것 같지만, 실은 조용히 움직입니다 천천히 홍수가 됩니다. 힐데가르트는 내게 말씀하시기를, 어떤 고통도 샘에서 솟아나듯 그렇게 툭툭 솟아 나와 몸 구석구석 실핏줄 안으로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몸은 섬세한 손길로 고통을 부드럽게 만들어 매만져 준다는 것입니다. 살도 그 이유를 알고 있고 영혼도 그러합니다. (<빙엔의 힐데가르트>, 루치아 탄크레티/임원지 역, 으뜸사랑, 2014, 8-10)
*** 이탈리아의 작가 루치아 탄크레티가 쓴 성녀 힐데가르트의 성인전이다. 힐데가르트 성녀가 살아 있었을 때, 그곳 수녀원장인 아델라이스에게 성녀 자신의 생애에 대해 구술한 형식으로 쓰여졌다. 소설이라는 문학작품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역사성은 좀 떨어지지만, 루치아 탄크레티가 이해한 성녀 힐데가르트에 대해 알수 있고, 저자 루치아 탄크레티의 아름답고 화려한 문장을 많이 볼 수 있다.
침묵이 정적이고 수동적인 것만이 아니라,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역동성을 말하기 위해, 침묵이 움직임이 없지만 움직이면서 마침내 강과 홍수를 만들어 가는 원천이라고 표현하고 잇다. 그리고 인간을 괴롭히고 피흘림을 연상케 하는 고통도 인간의 모든 존재안으로 스며들어 인간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