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융의 종교적 고백을 담고 있다. 융은 여러 다양한 경로를 통해 종교적인 문제들과 씨름하도록 이끌림을 받았다. 종교적인 것에 대한 융의 개념은 많은 점에서 전통적인 기독교와 다르다. 특히 악의 문제에 대한 그의 답변이라든지, 신이 선하기만 하거나 ‘사랑하기만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그의 관념을 보면 그러하다. 교의적인 기독교의 관점에서 본다면 융은 국외자다. “중세였더라면 사람들이 나를 화형시켰을 것이다!”라고 격한 어조로 그가 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우리 세기의 교회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신학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는 믿음을 요구하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 이해와 숙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말한다. “나는 몰이해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자가 빠져드는 그러한 고독을 겪을 만큼 겪었습니다. ‘자서전’은 내가 연구하고 노력하여 얻은 빛에 비추어 살펴본 나의 생애입니다. 내가 어떻게 존재하느냐와 내가 어떻게 글을 쓰느냐 하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생각과 나의 모든 노력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639-642)
- 새롭게 보고 새롭게 말한다는 것은 기존의 틀을 깨고 그로부터 벗어난다는 말이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타성에서 벗어나고, 외부의 강한 반대와 직면하고 이것을 뚫고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기존의 거부와 압력과 압박이 필연적이다. 많은 사람이 현실에 안주하는 이유이다. 이런 내외부의 장애물과 싸우며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거, 예언자적인 일이다. 그리고 예언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항상 자기 자신과 자신의 내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들은 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