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은 어떤 혼돈이나 의혹 속에 있다는 뜻의 의심이 아니라, 생의 현실을 찾기 위해 의심해 보는 것, 즉 더욱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 질문을 던져 보고 답을 발견하려는 의문을 가져 보는 것입니다. (27) * 남을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고, 자신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개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참으로 힘들지요. 그러니 사랑은 어려운 것입니다. (29) * 인간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기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31) * 복음은 지성으로 동의만 하는 게 아니라, 인간 전체에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33) * 절망은 우리가 그 절망을 이겨낼 준비만 되어 있다면 모든 사물의 핵심으로 가는 열쇠인 듯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않는 위기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그럴 때 거짓 신을 대용품으로 만들어 내지 말아야 합니다. (37) * 기도할 때 하느님의 부재. 여기서 말하는 부재란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안 계시는 듯 느낄 때 그 부재의 느낌을 말합니다. 기도란 만남이며 관계라는 것, 즉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며 우리에게나 하느님에게나 강요할 수 없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관계는 서로 자유로울 때 시작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51) * 우리는 하루 24시간 중 겨우 몇 분 정도만 하느님을 위해 쓰면서, 이 시간이 그분께서 현존하지 않으신다고 불평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부재를 불평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안 계실 ㄹ때보다도 우리가 외면할 때가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52) * 하느님을 만나려면 그분과 무언가 같은 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분을 볼 수 있는 눈을, 그분을 알아챌 수 있는 예민함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54) * 우리는 그분께 무엇인가를 받기를 원하지, 그분 자체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관계일까요? *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가 기도하는 그 문제에 몰두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기도할 때 쏟는 열정이 하느님의 현존과 그분께 대한 신앙과 그리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58) * 기도는 그전 내 안으로 향하는 여행이 아니라, 나 자신을 통해서 내 가장 깊은 곳, 하느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서 하느님과 만나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위해 두 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첫째는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둘째는 기도하면서 어떻게 말하고 어디를 향해 말씀을 드려야 하나, 하는 것입니다. (87) * 자신이 하는 말에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마음이 거기에 없으며, 생활이 기도하는 것과 같은 방향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기도는 하느님께 다다를 수 없을 것입니다. (101) * 깊은 감동이 느껴지는 구절, 자신이 이미 경험한 그 무엇을 표현한 구절, 죄나 기쁨이나 내적 투쟁을 말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는 구절에 표시해 놓으십시오. 그리고 그 구절을 외워 보십시오. (107) * 우리의 생활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내적인 삶은 거의 없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자극이나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외부에서 자극하는 것이 없으면 우리 안에서 우리를 어느 방향으로 가게 하는 것이 거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안에 있는 무엇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텅 비어 있고, 외부의 자극이 있어야만 비록소 무언가를 하려고 합니다. (122) * 찰스 디킨스의 <<픽윅 클럽 여행기>> 라는 소설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픽윅이라는 주인공이 클럽에 갑니다. 마차를 타고 가면서 마부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이렇게 크고 무것운 마차를 어떻게 저런 조그맣고 말라빠진 말이 끌 수 있습니까?” “말이 아니라, 바뀌가 끄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요?” “보십시오. 바퀴 한 쌍에 기름칠을 잘해 놓았거든요. 그래서 말이 조금만 힘을 주기 시작하면 바퀴들이 어찌나 잘 도는 지 저 불쌍한 말이 살려면 빨리 뛰어 달아나야만 하지요.” 우리도 이 말처럼 살아가는 듯합니다. 우리가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살기 위해 마차에서 달아나는 말처럼 산다는 말입니다. (123) * 예리고 맹인의 절망이 깊었기에 감히 치료받고 구원되어 온전하게 되고 싶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절망은 온전한 희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절망을 깊이 경험하지 않아서 기도가 뜨겁지고 않고 확고한 믿음오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것을 그대로 둔 채, 추가로 하느님도 원합니다. 우리의 절망이 참으로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것이고, 우리의 외침이 삶 전체의 필요를 내포할 정도로 간절하다면 그때 우리는 기도할 수 있고 하느님과 만나는 기도의 핵심에 이를 수 있습니다. (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