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 교황의 마지막 이야기>, 페터 제발트 대담.정리/김선태, 가톨릭출판사, 2017
* 추기경(요제프 라칭거)은 복잡하게 보이는 것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이를 통해 본질을 들여다보는 데 뛰어났다. 그리하여 과학과 종교, 물리와 형이상학, 사상과 기도 등을 서로 연결시켜 신앙의 신비를 설명하기도 했다. (9)
* 그는 이렇게 가치가 전도되는 현실을 반대하는 그리스도교를 변론해야 한다는 사명을 갖게 되었다. (9)
* 그는(라칭거) “우리 역사의 근본적 문제는 하느님을 인간의 지평에서 떼어 놓은 데에 있다.”라고 경고한다. 덧붙여 인류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빛을 외면함으로써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렸고, 그로 인해 파괴적인 결과를 목격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계시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세속적이고 유물론적인 태도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세계관이 그리스도교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보여 주기 위해서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오히려 저항하며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12)
* 새 교황(베네딕도 16세)은 교회의 진정한 문제가 신자 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명확하게 지적했다. 교황에게 참된 개혁은 내적인 각성, 불타오르는 마음에 관한 문제였다. 그는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할 일은 그리스도에 대해 확실히 깨닫고, 믿을 수 있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라 여겼다.(13)
* 베네딕도 16세 교황을 따르던 이들은 그의 많은 것을 그리워한다.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마음을 갖게 하는 지혜로운 연설, 다채로운 표현, 정직한 분석, 깊은 인내의 자세, 어떤 사람도 구현할 수 없었던 기품, 수줍음타는 웃음, 찰리 채플린처럼 무대에 올라갈 때 약간 서투른 움직임, 그릇된 환상과 광신에 빠져드는 것을 막는 이성을 신앙의 보증으로 고집하는 태도,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의 현대적인 사고방식 등을 그리워한다. (18)
* 그는 신학자로서 이미 있었던 것을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본질적인 것을 인식하여, 그것을 시대의 맥락에 적용하고 새롭게 표현할 뿐이었다. 그는 교회를 시간과 공간을 구원하는 배, 더 나은 세계로 데려다주는 노아의 방주로 이해했다. (19)
* 그가 교황으로 재임하던 8년은 교회가 내적인 성을 굳건히 하고, 영혼의 힘을 기르기 위한 대피정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그의 후임자 프란스코 교황은 그를 ‘위대한 교황’이라고 칭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분은 자신 지성의 능력과 통찰력 때문에 위대했고, 신학에 대한 지대한 공헌 때문에 위대했으며, 교회와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위대했고, 자신의 성덕과 신앙심 때문에 위대했습니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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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베네딕도 16세 교황)는 ’권력‘을 저의 강한 힘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항상 책임으로, 고되고 무거운 짐으로 느꼈습니다. 군중이 환호하는 것은 여기 있는 이 불쌍한 제 자신이 아니라 제가 대변하는 분을 두고 환호한다는 것을 항상 되새겼습니다. (28)
* 부족한 정신력은 제가 항상 더 높은 곳에 머무는 것을 방해합니다. 이런 점에서 묵상과 기도에만 전념하는 것은 충족될 수 없는 갈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높은 가치를 위해 내적인 자유가 많아야 합니다. (32)
* “네 명 혹은 다섯 명을 위해서도 강론을 준비하나요?”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세 명이든 스무 명이든 수천 명이든 강론을 준비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항상 사람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34)
* 저는 주일마다 짧은 강론을 하고 있습니다. 한 주간 동안 이 강론을 위한 저의 생각을 조금씩 발전시킵니다. 하나의 복음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묵상할 수 있게 제 생각을 서서히 펼치는 것입니다. (35)
* 저는 항상 내적으로 그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그분께 다다르지 못하는 참으로 가련하고 작은 사람입니다. (39)
* 저는 신앙의 근본적인 확신을 내려놓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 더 확실히 머물러 있으려 합니다. 그 다음에 문제를 대합니다. 그리고 무언가가 이해되지 않을 경우에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이해하기에는 제 그릇이 너무 작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성경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아도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실 때까지 겸손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40)
* 신앙의 힘으로 평범한 사람도 깨우칠 수 있습니다. 신앙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은 깨우침(조명)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세계를 깨우침, 빛으로 옴, 보게 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 이 결정(사임)은 쉽지 않았습니다. 천 년 동안 사임한 교황이 없었고, 1294년에 있었던 사임도 예외였기 때문에 사임을 쉽게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에게 사임은 극도로 힘든 내적 갈등이 필요없을 정도로 너무나 분명하기도 했습니다. (46)
* 당시(바티리스크 사건)에 저는 일이 평화롭게 해결될 경우라면 몰라도 일이 잘못될 경우에는 사임하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사도좌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나 어떤 억압 때문에 사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57)
* 저는 누구에게도 협박받지 않았습니다. 설령 누군가 저를 협박한다 해도 제가 협박에 굴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그런 시도가 있었다면 저는 절대 사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강요가 있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58)
* 늙고 병약한 아버지는 내적이고 깊은 의미에서 그리고 특별한 관계와 책임에서는 계속 아버지로 존재하지만, 아버지의 임무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주교들에게도 마찬가지이지요. 저는 교황이 자신의 현존재를 통해 단순한 존재의 만족뿐만 아니라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9)
* 사임은 도피가 아니라 저의 봉사직에 충실히 머무는 또 다른 방식입니다.(76)
*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집필한 내용은 위대하고 온전한 교과서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어딘가 비인격적이기도 합니다. 이에 반해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자기 자신과 싸웠으며, 회심한 후에도 싸웠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작품을 극적이고 아름답게 했습니다. (132)
* “첫 미사에 초대하는 초대장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신앙의 주인이 아니라 기쁨의 봉사자입니다.‘” 저는 제 자신이 존경받는 사람으로 소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 종임을 스스로 의식하는 것은 저에게 위한을 줄 뿐만 아니라 제가 양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도 중요했습니다. (145)
* 보좌 신부 시절에 40여명의 아이들이 강의를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신의 부모님에게서 종교 수업을 너무 진지하게 들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거기에서 제도적으로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지만, 실제 세계는 교회가 계속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146)
* 청소년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내적으로 분열을 겪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기 내면의 어떤 부분이 신앙과 맞서는 것입니다. (147)
* 저는 젊은이가 단순하게 목표에 이르러 어디에서나 칭찬만 받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가 자신의 한계를 경험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자신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듣고, 부정적인 상황을 두루 겪는 것도 좋은 경험입니다. 그리고 단순하게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는 것도 필요합니다.(155)
* (<황야의 이리>)는 몰락하는 인간에대한 인정사정없는 분석을 담고 있습니다. 현대인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람들에게 실제로 스며들어 있는 문제의 원인을 밝히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162)
* 저는 책상에 있을 때 생각이 잘 떠오릅니다. 하지만 제가 무언가를 근본적으로 수고해야 할 경우에는 소파에 몸을 맡깁니다. 그러면 고요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166)
* (파스칼의) ‘기억’에서 관건은 ‘철학의 하느님’과 대립되는 ‘신앙의 하느님’, ‘아브라함의 하느님과 이사악의 하느님과 야곱의 하느님’이었습니다. 당시의 유행은 그리스적인 것을 잘못된 발전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교에 잘못 들어온 것으로 단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대신에 사람들은 근원적으로 성서적인 것을 찾는 것, 말하자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마음에 말씀하시는 아브라함의 하느님의 생생함을 찾기를 원했습니다. (168)
* (아우구스티노는) “플라톤주의자들에게서 나는 ‘한 처음에 말씀이 있었다’를 배웠고,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말씀이 사람이 되었다’를 배웠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말씀이 나에게도 다가오셨다”라고 말했습니다. (169)
* 우리에게는 내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나를 알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분을 어딘가 이성으로 가까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단일한 존재입니다. 이성과 전혀 관련되지 않고 완전히분리되어 있는 것은 내 실존 전체에 통합되지 않고 어딘가 다른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아브라함의 하느님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구약 성경은 근본적으로 철학의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저는 서로 다른 길이 서로 의지하여 나아간다고 생각했고, 그 접촉점을 알렉산드리아 학파에게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중요한 것은 ‘나의 신안은 도대체 무엇인가? 신앙은 내 실존 전체에서 어떻게 존립하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170)
* 저는 결코 정치적으로 행동하려고 시도한 적이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항상 정치와 그 이면에 있는 철학에 큰 관심을 두었습니다. 정치는 철학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지요. 정치는 ’우리가 무언가를 만든다‘라는 의미로 실용적이며 단순하게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정치에는 전체의 그림이 있어야 합니다. (185)
* (공의회 당시) 저는 진보 진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시에 진보는 신앙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앙을 잘 이해하도록 가르치고, 신앙을 근본적으로 제대로 실천하자는 것이 진보를 뜻했습니다. (203)
* (<가톨릭 교리서>를 만들면서) 우리가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면, 그것을 묘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면 우리는 아무것도 말해서는 안됩니다. 이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날도 교회가 믿고 가르치는 바를 명확히 말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268)
*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두 번째 임기가 끝나고) 제가 세 번째 사임을 하기도 전에 그분(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에게 사임한다고 글을 쓸 필요도 없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임 청원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내가 여기에 있는 한 계속 있어야 합니다.” (271)
* 어떤 사람(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떠나면 이것은 다른 사람의 가슴에 남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저는 그분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우정이 계속된다는 것은 정말 아주 깊은 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274)
* 한 교황(요한바오로 2세)은 신비적이고 마리아에 친근하며, 다른 교황(베네딕도 16세)은 학식이 높고 예수님에게 친근한다. 한 교황은 행동적인 인물이며, 다른 교황은 주님의 포도밭에서 일하는 수줍은 일꾼이자 인기를 포기했던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핵심 사명에 대해 타협하거나 희석하지 않고, 하느님 말씀의 위대함과 순수함을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의 내적 정화를 개혁의 목표로 보았다. (278)
* 교황님은 강론에서 궁극적인 척도를 오직 개인과 그 욕구에 두는 ‘상대주의 독재’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교회는 이런 상황에서 모든 이데올로기와 유행 현상을 반대하며 신앙의 진리를 선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제들은 ‘거룩한 갈망’에 계속 영감을 받아 사람들에게 신앙의 선물을 가져다줘야 하며, ‘하느님의 기쁨을 위해 영혼을 열어주는 말씀’을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와의 친교 안에’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279)
* 제가 어떤 분(교황님들)을 닮을 수는 없겠지만, 모든 분들이 저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83)
* 제가 무언가를 쓰거나 생각할 경우에 저에게는 오직 고요만이 필요합니다. 홀로 있을 수 있어야 하지요. 저는 고요 중에 생각을 여물게 할 수 있는 책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287)
*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05년 4월 22일, 즉위식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저의 진정한 통치는 저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며, 저의 생각을 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보편 교회가 주님의 말씀과 뜻에 귀를 기울이며 그분의 인도를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진화의 우연하고 무의미한 산물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는 하느님의 열매입니다. 하느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원하셨고, 사랑하셨고, 필요로 하셨습니다.“ (290)
* 교황은 영적인 교양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시대의 흐름이 무엇이며, 현대의 문제와 과제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학자는 삶의 맥락을 지나치게 이론에 따라 관찰하여 뒤늦게 알아차린다고 비난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학자는 그런 다음에 서서히 사람들을 통해서 배우게 되고, 더 성숙한 사람이 됩니다. (292)
* 저는 이른 아침에 봉헌하는 미사성제에서 침묵과 집중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만남을 통해 하루를 시작하는 성향이 아닙니다. 저는 작은 미사를 봉헌하고 그 다음에 고요하게 기도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미사에 참여하는 것을 배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매일 새로운 얼굴, 많은 만남, 그것도 항상 서로 다른 언어로 이루어지는 만남 등은 저에게 무리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만남 후에도 적어도 식사 시간만큼은 고요하게 보내야 했습니다. (296)
* 저는 항상 입 영성체와 손 영성체 둘을 병행했습니다. 그러나 성 베드로 광장에는 성체가 훼손될 수도 있고 또 성체를 주머니에 넣는 사람들이 자주 있었기 때문에, 입 영성체를 통해 그러한 불상사를 막으려 한 것입니다. (298)
*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에 대해) 성직사성이 이에 대한 권한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곳에서는 엄정한 조치를 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보고, 이것을 신앙교리성의 업무에 이관시켰습니다. 제가 의식했던 것은 이것이 중대한 과제이기에 비판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이 문제를 더 잘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신앙교리성에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신앙교리성이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은 이 과제가 교회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305)
* 트리엔트 미사 전례에 대한 재허용을 다른 미사를 드려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안됩니다. 제가 항상 말해 왔고 지금도 말하는 점은 과거의 교회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거룩했던 전례가 갑자기 금기시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외형이 달라져도 내적 동일성은 계속 가시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308)
* (<예수 그리스도>의 집필 시) ”내적으로 제가 몰두했던 일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서, 제가 스위치를 켜기만 하면 즉시 밖으로 나오는 것과 같았습니다. (315)
*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그래, 나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라고 말했던 적은 없나요?” 누구나 ‘이 모든 것이 정말 사실일까’라는 물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구체적인 체험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에 저를 무장시켜 저를 파괴하지 못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316)
* “교황님에게 ‘탈세속화’는 인간의 방향 전환, 그리스도교의 사랑에 대한 실천 방향 전환 혹은 사회적이고 정치적 참여의 퇴각을 의미하는 것이아니라, 권력의 방향 전환, 재물에 대한 헛된 환상에서의 방향 전환, 거짓과 가지기만에서의 방향 전환을 의미했습니다. ‘탈세속화’는 올바르지 않는 것에 대항하면서,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세계관과 결합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영원한 생명의 신비를 포함하는 그리스도교에 결합된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 (사제들의 성추행에 대해) 교회는 교회법상으로 오직 직무 정지만 선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법에는 완전히 불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 주교들과 함께 다음과 같이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런 사제들이 환속될 경우에만, 우리가 그들을 처벌했으며 그들이 사제 직무에서 면직되었다는 것이 분명하게 될 것이다.’ (339)
* 그리스도교의 근본적인 모습이 더 이상 현대 문화에 영향을 주기 힘들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교를 더욱더 비관용적으로 대하는 실증주의적이고 불가지론적인 문화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가치 의식과 생명 의식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짊어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350)
* 교회가 유럽을 기반으로 하는 낡은 골격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새로운 형태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명백한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새로운 현존 방식을 찾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351)
* “믿는 사람은 결코 혼자 있지 않군요?” 저는 주님과 깊이 결합되어 있음을 느끼기 때문에 결코 온전히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자신은 홀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어떤 것도 혼자서 행할 수 없습니다. 항상 그분이 함께 하시지요. 저는 그저 그분의 음성을 경청하고 그분께 마음을 열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주 가까운 협력자와함께 일해야 합니다. (354)
* “교황님의 약점은 무엇인가요?”
목표를 향한 명확한 결단과 지휘일 것입니다. 저는 이런 관점에서 볼때는 교수이며, 정신적인 일을 생각하고 숙고하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은 저의 특징이 아니라, 오히려 제 약점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357)
* “교황님을 개혁가였나요, 수호자였나요?” 항상 두 가지를 동시에 행해야 합니다. (358)
* 하느님이 앉아 계시는 그런 장소는 없습니다. 하느님은 친히 모든 장소, 어디에나 계십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을 들여다보면, 그러한 곳을 찾을 수 없지만, 하느님의 흔적은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이를 보는 곳에서도 하느님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악을 보기도 하지만 선행과 사랑도 봅니다. 그곳이 바로 하느님이 계시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의 사상을 쇄신하고, 이런 공간적인 표상을 완전히 버리고 새롭게 이해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어떤 두 사람이 대륙을 사이에 두고도 서로 맞닿을 수 이는 이유는 여기에 공간적인 차원과는 또 다른 차원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가운데도 영혼의 현존이 있는 것처럼, 하느님은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실재 자체이십니다. 또한 모든 실재를 지탱하는 실재이십니다. (360)
* 신학은 인간에게 다시 상상의 가능성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신학과 신앙을 현대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부족합니다. 곧 현대를 이해하여 상상의 도식을 만들거나, 사람들이 하느님을 어떤 공간에서 찾지 않도록 돕는 것이 필요 하지요. (361)
* 인격적이라는 것은 그분이 어느 한 곳에서 묘사될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격은 우리 인간에게도 단순한 공간을 넘어서 무한성을 개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362)
* “내가 진리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 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 진리가 있고 그 진리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음을 압니다. 우리는 이러한 진리의 움직임을 따라가려고 노력합니다. (365)
* 사랑은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주제가 아닙니다. 만일 사랑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에 대해서 말 할 수도 없습니다. ... 이렇게 사랑을 받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돌려주는 것을 경험하면서 사랑이 더욱더 근본적인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자기 자신, 나아가 타인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근본적인 힘이 바로 사랑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통해 점점 더 명확하게 된 것은 하느님이 엄청난 권력의 소유자나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며, 그분은 사랑 자체이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때문에 저의 삶이 그분에 이해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가고 부르는 그 권능에 의해 우리의 삶이 실현되어야 합니다. (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