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콰드 호의 에이헤브 선장은 바다 괴물에게 다리 한쪽을 잃었다. 그 후 그는 오직 복수만을 꿈꾼다. 바다 괴물 모디 딕을 잡아 죽이는 것이 선장의 유일한 인생 목표다. 모디 딕은 무시무시한 흰 고래다. 복수심은 어디에서 올까? 분노다. 부당한 일을 당해 억울할 때, 누군가에게 자신의 것을 빼앗겼다고 확신할 때,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감사의 표현 혹은 답례를 제대로 받지 못할 때 분노가 생긴다. 분노하는 사람은 혼란은 원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은 질서다. 원래의 질서로 되돌려놓겠다는 마음에서 분노는 시작된다. <모비 딕>은 손에 넣기 힘든 무엇인가를 쫒는 우리의 이야기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열렬하고 간절히 원한다. 그 모든 것은 흰 고래로 상징될 수 있다. 흰 고래는 복수의 대상뿐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된 알 수 없는 오래된 욕망일 수도 있다. 우리가 뒤쫓는 흰 고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모비 딕은 어쩌면 성배와 같다. 어마어마하고 귀한 성배.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름은 붙이기 힘들어도 깊은 곳에서 욕망하는 것이다. (<모든 삶은 흐른다>, 로랑스 드빌레르/이주영, FIKA, 2023, 219--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