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부버는 하느님과 믿음에 반대하는 강력한 논증이 가득한 책들을 갖고 있었던 박식하고 계몽된 어느 학자 이야기를 즐겨하곤 했다. 학자는 자신의 스승에게도 그 책들을 읽어 보라고 재촉했다. 다음에 스승을 방문한 학자는 늙은 스승이 자신의 주장 앞에 항복하고 신앙을 버렸거나, 아니면 필사적으로 신앙을 옹호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스승은 이성과 인간 경험이 끌어모을 수 있는 온갖 신앙의 반대 논증으로 묵직한 그 책들의 무게를 손으로 가늠해 보더니, 자신의 율법서를 부드럽게 쓰다듬고는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결국엔 이게 맞을 걸세." ( <고해사제의 밤>, 토마시 할리크/최문희, 분도출판사, 2021, 84)
☞ '아마도', 자기 확신이 아니라 다른 가능성으로 열려있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확신과 신념으로 걸어왔던 삶의 길을 부정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식적으로 맞는 말이고 지적으로 흠 잡을 데 없지만 다른 방향과 길과 수단을 선택하겠다는 단호한 마음의 표현이다. 사람들이 성장하는 것은 짧막한 이런 말들 때문이다. 이런 말과 더불어 불확실한 미래의 세상에 투신하면서 그때까지와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한 말이다. 신앙이란 확신과 신념으로 가득찬 요지부동의 삶이 아니라 불안과 의심과 의혹으로 흔들릴지라도, 다시 굳건히 설 수 있게 자기가 서 있는 땅을 고르고 다지는 삶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