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없이 되는 일이 있을까? 즉시 이루어진 일처럼 보이는 것도 그 이전에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다. 기다림은 싹이 트는 시간이다. 기다림은 열매가 익는 시간이다. 바라는 일이 이루어질 수 있게 주변에 있는 일들이 재배열되는 시간이다. 인간적인 바람과 기대와 욕심이 가라앉아 맑게 되는 시간이다. 기다림과 관련된 많은 기억이 있다. 새 옷을 입을 수 있는 설을 기다렸다. 학교가 파하는 때를 기다렸다. 언제 올지 모를 편지를 기다렸다. 세례받는 날을 기다렸고, 하느님을 무작정 기다렸다. 군에 가서도 기다렸고, 훈련을 하고 밤에 보초를 설 때도 기다렸다. 신학교에서 함께 기도하면서, 캄캄한 성당에서 기다렸다. 난지도 쓰레기 더미에서 여름밤을 지내며 기다렸고, 캄캄한 반지하 방에서 이름도 모를 용수철을 구부리면서 기다렸다. 서품을 받고 맡겨진 일을 하면서 기다렸고, 연피정 때도 기다렸다. 눈에 익은 산하를 걸으면서 하룻밤을 잔 낯선 숙소에서도 기다렸다. 비행기를 기다렸고, 나를 데리러 올 사람을 기다렸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기차와 트람을 기다렸다. 하늘에 길고 흰 연기 자국을 남기며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를 생각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며 기다렸고, 비 오는 날과 안개 자욱한 날에도 기다렸다. 여름이면 여름대로, 추위가 뼛속을 파고드는 겨울이면 겨울대로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올 것이 아무것도 없고, 올 사람도 없는데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엉뚱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 뿐이었다. 의심이라기보다는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레 든 생각이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 그분이 하느님이시라면 어떤 하느님을 바라고 있었던가? 기다림의 하느님이 이미 오셨지만 내가 그리고 있었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에 스쳐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기다림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왔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의 희망 가득한 기다림이 있었다. 어둠 짙어지는 해질녘의 기다림도 있었다. 나의 기다림만 생각했었고, 다른 사람의 기다림에 대해서는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나의 기다림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분에 대한 응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