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그가 4녀 1남의 아이들을 웬만큼 키워놓고 마흔 살의 늦깎이로 문단의 한 모퉁이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그에게 가장 새로웠던 것은 바로 자신의 이름이었다. “오랫동안 ‘누구 엄마’하는 식으로만 불리다가 내 이름이 생기니 이상하더라”고 그는 고백한다. 그리고 소설가가 됐다는 것은 그에게 자기 자신의 이름을 비로소 회복시켜주고 한 사람의 당당한 사회인으로 거듭나게 한 것 말고도 그의 삶의 내용을 천천히 그러나 깊숙히 바꿔놓고 있었다. 이제 삶은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문학의 잘료서서 살아져야 했다. 다시 말해 객관화시키고 반성하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 “그걸 일종의 의식화라고 할 수도 있을까요? 뭐든지 챙겨서 보게 되고 무심히 사는 것이 없어지니까, 바로 그것이 사는 맛의 심화이지만 고단한 일이기도 해요. 이건 좀 신긴한 일인데 문학은 지독한 곤란에 빠졌을 때 구원의 여지가 되기도 하지요. 곤란을 곧 문학으로 보상받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38)
*** 조선희가 박완서와 대담하는 내용에 나온 내용이다.
내게 누나가 네 명있는데, 누나들이 결혼한 후 일상생활 하면서 누나의 이름으로 불린 경우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항상 ’누구 엄마‘였다. 누나들 뿐 아니라 주위에 살고 있는 결혼한 여자들도 매 한 가지였다. 지금은 결혼한 당사자들 사이에서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외 사람들은 아직도 ’누구 엄마‘라고 부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족을 중시하고 관계를 중시하는 우리 문화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언어습관이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의 고유함과 주체성을 강조하는 서구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상태에서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구 문화의 뿌리인 성경의첫머리에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가장 먼저 하신 것은 사물에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었으며, 사람을 만드신 다음에도 그에게 ‘아담’이라는 고유한 이름을 지어주셨다. 바로 이 순간부터 사람은 하느님의 피조물이긴 하지만 하느님의 대화 상대로서 들어올려지게 되며,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우위에 서게 된다. 이것을 보면서 한 사람이 자기 이름을 갖게 되고 그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고유한 한 인간으로 인정한다는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름이 없으면 이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로서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결혼한 천주교 부부들에게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기가 어색하다면 세례명으로 불렀으면 좋겠다. 주변 사람이 천주교 신자라면 자기 세례명으로 불러 주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천주교 신자 아닌 사람들에게도 ‘누구 엄마’라고 부르기 보다 어색하겠지만 천주교 세례명으로 불러주기를 바란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호칭이 문화의 산물이고 주변 사람도 고려해댜 하고, 습관이고 일상이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자기로 살기 위한 첫걸음이라 생각한다. 자기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 박완서 선생님은 이것을 ‘의식화’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