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첫머리를 보면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온갖 짐승을" 보이시면서 그들의 이름을 짓게 하셨다고 하였다. 이때 인간은 밝은 감관과 영혼의 눈으로 짐승의 외양을 뚫고 그 본성을 알아보고는 본 바를 이름하여 말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영혼은 그 조물에 호응할 수 있었다. 밖에 있는 사물의 본성과 그에 응하는 인간의 답 - 이 두 가지를 하나로 합친 것을 인간은 이름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의 한몫과 인간 내면의 한몫이 이름에서 하나가 됐던 것이다. 인간이 그 이름을 부르면 사물의 골자가 곧 마음에 떠오르고, 그 사물을 보면서 마음안에 일어났던 반향도 되살아났던 것이다. 이름이란 이렇게 사람이 세상과 자기 자신을 함께 깨달을 수 있는 신비로운 표시였다. 낱말들은 모두 이름들이다. 그리고 말을 한다는 것은 사물의 이름들을 다스리는 고도의 예술이다.... 하느님의 이름은 참으로 신비롭다. 무한자의 본성이 거기에 밝혀진다. 하느님이라는 이름 말마디 안에 우리 영혼의 핵심도 자리한다. 우리 영혼은 하느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 우리 본성은 그 골수에 사무치기까지 하느님께 응한다. 우리의 모든 존엄, 우리 영혼의 영혼이 "하느님", 그리고 "나의 하느님"이라는 말마디 안에 담겨 있다. 나의 근원과 나의 목적, 내 존재의 시자과 끝, 숭배와 향수와 참회, 이 모든 것이 그 안에 있다. (<거룩한 표징>, 로마노 과르디니/장익, 분도출판사, 2000, 103-109)
☞ 다른 때보다 유난히, 요새는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곤한다. '거룩한 표징'도 자주 읽었던 책인데, 이런 구절이 있었나 싶은 구절을 많이 발견한다. 전에 읽을 때 건성으로 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 순간의 상황이 다르고, 매 순간 책을 통해 주시려는 주님의 축복이 다르기 때문이다. 로마노 과르디니의 "하느님 이름"을 읽으면서, 자주자주 "하느님", "나의 하느님"을 불렀다. '하느님'이라는 이름이 주는 울림이 좋았고, 그 울림이 나의 온몸과 마음에 파고 들어와 퍼져나가는 것도 좋았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과 내 영혼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부른다, "하느님, 나의 하느님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