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진만에서생활글/생활 속에서 2022. 11. 26. 16:24
신학교 방학때면 강진에 와서 며칠씩 머물곤 했다. 누님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했지만, 같이 공부하고 있었던 친구의 고향이었기 때문이었다. 남포를 거쳐 바다로 나가는 길이 아름다웠다. 논농사를 하고 있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바닷가임을 알려주는 어구들도 가끔 볼 수 있었다. 산책하는데 그만이었다.
어떤 때는 자전거를 타고 좀 더 멀리, 다산 초당까지 가기도 했다. 다산 초당에 있는 천일각에서 바라다보는 강진만과 바다는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내가 바라보고 있었던 그곳의 풍경을 유홍준 씨가 쓴 <문화유산답사기?>에선가 글로 써놓은 것을 보면서, 어쩌면 이렇게 잘 묘사할 수 있을까 감탄사를 연발했던 때도 있었다. <무진기행>의 첫부분에 안개를 묘사한 부분이 있는데, 이곳 강진만을 그려놓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 소설에서 어떤 사람이 바닷가 뚝방길에서 죽은 장면이 있는데, 아마 그곳은 여기쯤일거야 라고 상상하며 바닷가로 가는 길을 걷기도 했다.
아주 오랜만에 강진만쪽으로 나갔다. 몇년 전의 내 기억속에 있는 강진만이 아니었다. 계발하면서 옛날의 길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바다로 가는 고즈녁함과 한가함과 여유로움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눈에 익었던 옛 길들이 사라지고 널찍하고 쭉쭉 뻗은 자동차 도로로 이것이 남포로 가는 길이 맞는가 주저하기도 했다.
진흙뻘과 갈대로 많았던 강진만에 아주 큰 공원을 만들고 있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 따라 바람이 제법 불고 있어 모자가 바람에 날려가지 않게 하고, 겨울이면 자주 나오는 눈물과 콧물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전망대와 자건거 도로와 도보가 이미 완성된 곳도 있었다. 야외행사와 모임을 위한 널찍한 장소에서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와 북적거리고 있었고, ‘파크볼?’이라고 하는 운동에 전념하고 있는 사람들도 제법보였다. 지자체에서 주민의 의견을 모아서 한 일이었겠지만, 강진만을 관광단지로 계발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이곳저곳에서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사람에게는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떨떠름한 풍경이었다. 과거, 풋풋했던 신학생 때의 아름다운 기억속에 있는 것들이 파해쳐지고 무너지고, 무너뜨려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내자신의 일부가 그렇게 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이것은 강진만에서 일어난 일만이 아니라, 우리 개인의 내외적인 삶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가끔 일어난다는 것이다. 무너지고 파헤져지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아름다웠던 지난 날의 기억을 더욱더 소중한 것으로 여기게 하는 지도 모른다.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과 그것이 어떤 형태의 것이든 현재의 모습이 한데 어우려져서, 오로자 자기가 만들어가야 하는 내일을 만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