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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생활글/생활 속에서 2022. 9. 15. 14:24
코로나 자가진단을 합니다. 조금 긴장됩니다. 색깔이 조금씩 변하고 차오르는 것을 봅니다. 띠가 하나인가 두 개인가에 더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학교다닐 때 리트머스 종이로 산성과 염기성을 구분한 적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판단할 수 있는 매체들입니다.
내가 하느님을 얼마나 잘 따르고 있는지 측정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분께 대한 믿음과 희망도 측정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측정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에는 믿음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많습니다. 오늘 성무일도의 저녁기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무죄한 이 다칠세라 뇌물 받지 않는 사람"(시 15, 5)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돈보다 더 좋은 것이 세상에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좋은 돈을 어떤 사람이 나에게 그냥 준다면 그 사람이 얼마나 좋아지겠습니까. 그 사람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을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보통 사람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것을 그 사람에게 기꺼이 베풀어줍니다. 그 사람을 위해 '예'할 것에 대해서 '아니요'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죄를 물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 무죄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울 수 있게 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상식과 공정과 정의가 무너집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그냥 주어지는 돈을 뇌물이라고 합니다. 뇌물은 이 시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옛날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옛날에도 뇌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사람들은 죄악으로 이끌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편 저자가 "무죄한 이 다칠세라 뇌물 받지 않는 사람"(시 15, 5)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공정과 상식과 정의가 무너집니다. 이런 일이날 수 있게 그냥 주어지는 돈이 뇌물입니다. 뇌물은 지금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옛날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뇌물이 끼치는 해악도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