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은 빈 캔버스 앞에서 곤혹스러워 하면서도 그 앞에 앉아있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그림을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사물에 대해 아무리 많은 관찰을 하고 생각하고 사색하고 묵상했다 하더라도 캔버스 앞에 앉아있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비어있는 모니터에 커서만 껌벅거리고 있는 것을 보는 것에서부터 글쓰기가 시작된다. 묵상주제가 있든 없든간에 고요하게 앉아있는 것으로부터 기도가 시작된다. 비어있는 것에 뭔가 채워나가는 것이 삶이려니. 채워진 것을 비워나가는 때가 있어야겠지만, 이것은 훗날에나 하게된다. 채워지고 비워지고, 초월하는 삶이다.
지금까지 해오고 있었던 기도와 전례와 관련된 것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다. 그렇게 하고 싶었을 뿐이고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해왔던 것에 대한 회의가 아니라 쉼이 필요하다고 여길 뿐이다. 믿음의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고 '내가 믿는 것'은 아니다. 믿음의 공동체가 진실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인격성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믿음의 확신을 갖고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