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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생활글/생활 속에서 2022. 2. 3. 20:48
미인의 눈썹처럼 고운 초승달이다. 보고만 있어도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달빛을 따라 어둔 숲길로 들어간다. 새까만 숲의 어둠이 주춤거리게 한다. 누군가가 보고 있는 것 같고, 멧돼지라도 나올 것 같다.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아니라 바람소리로 바람의 세기를 가늠한다. 일직선으로 부는 바람은 없고, 규칙적으로 부는 바람도 없다. 자기 멋대로 부는 바람들이 만나고 부딪쳐 새로운 바람을 만들어 나간다. 불빛 하나 없는 곳에서 멈추어 선다. 어둠이라도 똑같은 어둠이 아니라, 등급이 있다. 계곡의 어둠은 더 짙다. 낮에 보았고 지금도 그대로 있을 나무와 풀잎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있음을 상상과 추측으로 알 뿐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별 하나가 보인다. 큰 별이 어서가 아니라 나뭇가지가 크지 않아서 보였을 뿐이다. 그 주위에 그냥 많은 별들이 있다. 내가 보고 있는 별과 나 사이에 아무 것도 없다. 그렇게 때문에 별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빛의 속도로 몇 년을 가야 있는 그 별과 나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빈공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현깃증이 난다. 지금 보고 있는 별빛은 과거의 빛이라고 들었다. 몇 년 전, 몇 십년 전, 몇 백년 전에 그 별을 떠나 오늘 나에게까지 온 것이다. 빛이 그 별을 떠난 다음, 그 별이 없어졌다면 어떻게 하지? 별빛이 별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이 자기가 돌아갈 집이 있어서였을텐데.
별을 보고 있는 내가 없었고 없어지고, 지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 하더라도 별을 있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태어남과 소멸을 계속하면서. 그 어떤 사람도 없는 그런 상태의 우주는 어떤 모습일까? 죽은 사람의 얼굴처럼 창백한 모습일 것이고 영원한 고요와 영원한 침묵...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고, 누가 만들었는지 자생적으로 생긴 것인지 알 수 없는 생명과 생명체가 나타났고, 내가 있고 별빛을 보고 있다는 사실. 현실이지만 상상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파도가 바닷가의 바위에 부딪혀 만들어내는 하나의 포말처럼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게 생겼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과 같은 사람의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승달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을 수 있는 것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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