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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에 머문다생활글/생활 속에서 2021. 9. 21. 21:25
연휴기간이다. 산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자동차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보통 때도 고요하지만 연휴기간에는 더 고요하다. 나무와 풀들도 다른 때보다 고요하다고 여길 것이다. 아침에 비가 내렸는데, 점심 무렵부터 맑은 날씨다. 파란 하늘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파란 하늘이다. 구름은 하얗고, 나무는 당연히 푸르다. 그늘진 벤취에 앉는다. 바람소리가 들리고 가을 벌레소리가 요란하다. 바람에 따라 나무잎들이 흔들리며 모양과 색깔이 변한다. 바람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언제까지라도 앉아 있을 것 같지만, 그리되지 않는다.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를 가야하는 것도 아니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오랫동안 고요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시간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과거에 매여있을 때, 미래에 대해 걱정할 때, 현존하기 어렵다. 현존한다는 것은 지금여기에 머무는 것이다. 최상의 상태여서가 아니라, 과거의 회한과 미래의 걱정이 힘을 빼앗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남아있는 힘으로 주어진 삶의 마지막까지 가야하기 때문이다.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을 할 수 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현존하는 것이다. 자기 삶에 성실하게 응답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로부터 받은 것도 아니고 누가 준 것도 아닌 삶에 대한 이 태도가 우리들의 삶을 만들어 가고, 우리들을 고유한 하나의 인격체로 만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