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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준비생활글/생활 속에서 2021. 9. 17. 22:08
내일부터 추석 연휴다. 오랫만에 조용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1년 365일을 사람(피정자)들이 왔다가 떠나기를 반복하는 곳이다. 3일동안 머무는 사람에서부터 40일, 혹은 세 달까지 머무는 사람들이 있다.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로 이곳에 올 것이다. 이곳에 온 이유를 알 수 있는 사람도 있고, 들어올 때 짧게 인사하고 나갈 때 잠깐 인사하는 사람도 있다.
여인숙에서 사람을 가려서 받지 않듯, 이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인다. 이런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지어진 집이지만, 지칠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편히 쉬고 깊게 기도하다 가시라고 이거저것 신경 쓸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곳에 오시는 분들이 깊은 산속에 있어 조용하다고들 하지만, 정작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저녁 시간을 제외하고는 조용한 곳이 아니다.
그래서 설과 추석 휴가 기간만이라도 피정자없이 지내기로 했다. 연휴기간이 아니라면 이곳에 올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자신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결정한 것이었다. 연휴기간에 이곳에 오시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1년 내내 자기 집에 손님이 있다면 얼마나 부담되겠느냐고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하곤 했다.
몇 일 전에 명절을 지내기 위해 본가로 떠난 형제가 있고, 내일가는 형제도 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사람이 이곳을 지키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지만, 오랫만에 혼자있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홀로있음의 복된 시간을 누리는 댓가로 식사를 준비해야 하고 밤의 무서움을 견뎌내야 하지만, 그 정도야 기꺼이 감당할 마음이 있다. 이 기간에는 알람없이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 저녁 일찍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기 보다, 저녁 조금 늦게 자고 아침 늦게 일어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하루가 너무 짧아 싫다는 사람도 있지만, 아침에 늦게 일어났을 때의 뿌듯함과 느긋함을 선호하며 살고 있다. 아직도 알람없이는 새벽에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몇 십 년동안 새벽에 꼬박꼬박 일어났던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명절휴가를 멋지게 보내기 위해 오늘 오후 읍내에 갔다. 빵을 사고, 이발을 하고, 도서관에 들렀다.
이발은 미용실에서 한다. 지금이야 미용실에 가서 컷트하는 것에 대해 부담이 없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다. 남자가 여자들이 머리자르는 곳에 간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곳 읍내에 미용실이 많다는 것은 3년 전에 이곳에 와서 미용실을 찾을 때 알게 되었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한 집 건너 미용실이었는데, 이것을 보면서 자매들이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미용실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많고 많은 미용실인데도 갈 때마다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신기했다. 지금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머리를 자를 수 있는 행운이 그리 많지 않았다. 오늘도 제법 오래 기다렸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렸으니... 미용실(이발소)에 대해 뭔가 쓸거리가 있을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벼르고 있을 뿐이다.
읍내에 갔던 주된 이유는 도서관에 가는 것이었다. 코로나때문에 자주 갈 수 없었는데, 오랫만에 가니 내부수리를 하여 깨끗하고 산뜻한 분위기였고 서가의 배치도 바꾸어져 있었다. 같은 도서관인데 아주 새롭게 여겨졌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아직도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책에 빠져있는 모습이 정겹게 여겨지고, 그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로 가슴이 뿌뜻해진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최소한의 생활 이상의 무언가를 열망하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음식이나 거주지만큼이나, 희망이 필요하다." (<노마드랜드>(큰글자), 제시카 브루더/서제인, 엘리, 2021, 17)
'노마드'(유랑하는 사람)의 희망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 쫒기는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 아웃사이더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사람들이다. 희망이 없지만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는 방법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안쓰럽지만, 그들이나 내가 할 수 있는 것 또한 별로 없다. 이런 상황에서 '희망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
명절 휴가. 코로나때문에 자유롭지 못하지만 보고싶은 사람을 찾아가고, 쉬고 싶은 곳을 찾아가고,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난 시간을 찾아 사람들이 움직인다. 부모님을 찾아가고, 아이들이 찾아오고, 조상들을 찾아가고, 가족들을 찾아간다. 많은 사람이 돌아다닌다. 어쩌면 유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랑하는 사람들의 희망은 정착해서 사는 것이 아닐까.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는 익숙한 곳에서 안정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