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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밤생활글/생활 속에서 2021. 7. 24. 22:19
하느님의 말씀. 생명을 주는 말씀이라고 한다. 용서와 자비의 말씀이라고 한다. 온갖 미사려구를 끌어들여 표현한다. 그 말씀에 대해 할 수 있는 말들은 다 했을 것이다. 남녀노소, 나의 많고 작음, 지역을 따지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그들의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똑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할 것이다. 왜 이러는가. 말씀에 목말라 하고 있기 때문인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듣고 싶은 이야기도 없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없다. 모든 말들이 공허하게만 여겨진다. 고요하게 앉아 있는 것만 못하다. 그 앉아있음이 쓸데없는 것처럼 보인다하더라도, 우리를 살려내는 생명의 시간일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것이고, 그분의 말씀을 파고 들지 않아도 그런대로 살 수 있을 것이며, 신앙인이라고 외치지 않아도 매일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신앙에 대한 과도한 의식은 역설적이게도 신앙의 발전과 성숙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 솔직하게 말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꾸밈없이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삶을 위한 기본자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여건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한다. 사실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큰 사람이 아니다. 자기가 뽐내는 만큼 대단한 사람이 못된다. 자기가 알고 있다고 뻐기는 것만큼 지식이 풍부한 것도 아니다. 어떤 일과 주제에 대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 부럽다기 보다는 가까이 하면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을 일어나게 한다. 바닥을 칠 때, 장벽을 만났을 때, 허공에 집을 짓지 않으면 안되는 난감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바로 그곳에서 도약한다. 유충에서 나비가 나와 하늘을 나는 순간인 것이다.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내 삶으로 들어올 때는 삶과 하나로 되지 않고 삶과 유리된 상태로 나타난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자재를 구입하는 것과 함께 구체적으로 땅을 파고 기초를 놓고 기둥을 세우는 작업이 함께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이 지어지지 않는다. 어떤 형태의 집이 지어질지 모른다. 그렇지만 시작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그 일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왠만해서는 하지 않고 그냥 지낸다는 것이다. 외적인 자극과 내적인 욕구화 충동이 일어날 때 구체적인 작업을 하게 된다. 세상살이 모든 분야에 선생님이 필요하지만, 공부에 전념하려는 사람에게는 좋은 선생님을 만났느냐 아니냐가 대단한 중요하다. 이런 상태에서는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보다는 스스로 공부를 하게 자극을 주고, 그 사람안에 있는 재능과 학문에 대한 본능을 일깨워주기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 주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한 주간에 토요일 밤 시간이 가장 느긋한 시간이다. 쓸데없는 것을 하면서 좀 늦게 자도 괜찮기 때문이다. 살면서 이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살아도 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이런 휴일과 휴가가 없었다면 사람들은 팽팽한 고무줄 같은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