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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갈기도.영성/다네이 글방 2021. 4. 11. 22:12
몇 년 전에 <작가란 무엇인가? 1-3>을 읽었습니다. 에서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라고 격찬한 에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가 250명을 인터뷰한 것 중에서 36명을 선정하여 12명씩 1권으로 묶어 출판한 책이었습니다.
지금은 36명의 작가 중에서 다시 읽고 싶은 작가를 아무렇게나 선정하여 다시 읽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읽었던 것과 아주 다르게 여겨집니다. 그때 읽으면서 밑줄을 치고 이곳 블로그 어딘가에 옮겨 적어 놓기도 했는데, 전혀 다른 책처럼 다가 오고 있습니다.
토니 모리슨이 이야기한 것이 가슴을 파고 듭니다.
“노예제 기록을 보면서, 자주 언급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묘사되지 않은 어떤 물건에 신경이 쓰였습니다. 재갈이지요. 수다를 떠느라 일을 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노예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지요. 재갈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내려고 오랫동안 애썼습니다... 남아메리카나 브라질 같은 곳에는 아직 실물이 남아 있어요. 자료를 찾는 동안 재갈이라는 물건, 이 개인적인 고문의 도구가 사실 가톨릭 이단 재판에서 유래한 것임이 떠올랐습니다. 또한 만들어서 판매하는 그런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러니까 직접 제작해야만 합니다. 뒷마당에 나가서 이것저것 합쳐서 직접 만들고 그걸 사람한테 물리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재갈을 묘사하는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독자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대신 그걸 무는 게 어떤 느낌일지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독자들에게 노예제가 어떤 것인지 알려주기보다 실제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노예의 입에 물렸던, 노예가 물고 있어야 했던 재갈. 목적은 일을 많이 하게 하기 위한 것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듣기 싫어 그들의 말을 빼앗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었겠고요. 이런 야만과 폭력을 행사했던 사람에게는 재갈이 어떤 재질로 되어 있고 어떤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재갈을 물고 있어야 했던 노예에게 촛점을 맞추게 되면, 재갈을 물고 있어야 했던 때의 느낌과 기분과 생각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글을 쓸 때는 글쓰는 사람은 어디에 촛점을 맞출 것인가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설명과 묘사가 필요할 때가 분명 있습니다. 이런 경우 독자는 주로 머리를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설명과 묘사가 지향하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느끼게 하고 공감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토니 모리슨이 과거에 사용했던 재갈에 대해 설명하고 묘사는 것보다, 재달을 입에 물고 있어야 했던 사람과 함께 느낄 수 있게 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토니 모리슨의 책을 한 번도 본적도 없고 읽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인터뷰에서 드러난 토니 모리슨은 온갖 어려움을 다 겪고 난 다음, 그것을 초월해 있는 사람처럼 여겨집니다. 초월했다고 하여, 현실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간의 폭력과 억압과 차별과 비참함을 따뜻한 마음으로 끌어안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