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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산 겨울숲교육자료/산과들과내 2021. 4. 2. 21:44
겨울에는 숲 해설가들이 하는 일없이 쉬어야만 합니다. 겨울 산이 위험하다고 하여 입산금지 시키는 산들이 많고, 겨울 산에는 볼 것이 없다고 하여 숲 해설을 신청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산은 산이어서 계절에 따라 볼 것이 얼마든지 있고, 들어보고 만질 수 있는 것, 맛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겨울은 사람에게 힘든 계절일 뿐 아니라 동식물에게도 혹독한 계절입니다. 야생동물들은 우선 당장 먹거리가 줄어듭니다. 여름과 가을의 그 많고 많던 열매나 곤충들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야생동물들은 가을부터 혹독한 계절 겨울에 살아남기 위해 부지런히 먹거리를 저장합니다. 겨울이 깊어지면 걔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잠을 자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야생동물들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간혹 까마귀의 깍깍거리는 소리가 들릴 뿐, 겨울산은 적막함 그 자체입니다. 살아있는 것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겨울 산을 바람이 채웁니다. 겨울 바람은 나무의 모양이 제각각이고 풀잎이 제 각각이듯 저마다 다릅니다. 소리의 강도가 다르고 방향이 다르고 사라지고 흩어져가는 곳도 제각각입니다. 태풍이 몰려오고 먼 바다의 파도 소리처럼 들리며 들짐승이 사그락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자동차가 달려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런 바람과 함께 겨울 산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 알게 되고, 그런 바람과 함께 홀가분함과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겨울산은 보이지 않는 생명으로 가득한 곳입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에는 생명이 눈에 보이지만 그와 동시에 생명의 덧없음도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겨울 산은 싱그럽고 화려하고 풍성한 생명과 그의 덧없음을 통과한 생명입니다. 나뭇가지 있는 겨울눈에서 바로 이런 생명을 확인하게 됩니다. 겨울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겨울눈의 어둠속에 있을 새싹과 꽃잎 때문입니다. 겨울눈의 겉껍질에 가려져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난 여름의 강렬한 햇볕, 나무를 뿌리에서부터 흔들어 대었던 폭풍우를 견디어 낸 생명 덩어리가 그곳에 숨어있습니다. 겨울 숲이 생명으로 가득 차 있음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이런 겨울눈 때문입니다.
겨울 숲은 무채색깔의 그림이고 흑백 사진처럼 아주 선명합니다. 하늘을 찌르는 소나무의 푸름과 회색과 갈색과 거무튀튀한 땅 색깔이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그 어떤 화가도 그렇게 멋진 색깔과 조화를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입니다. 마르고 죽은 듯이 서 있는 풀잎 또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엄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냘프지만 하늘을 뚫는 풀잎의 기개에 사람이 짓눌릴 정도입니다. 모든 풀과 나뭇가지들이 하늘을 향하고 있습니다. 기도하고 있다면 무슨 염원을 그렇게 품고 있는지, 애통해 하는 소리라면 무슨 슬픔과 고통인지, 환희의 손짓이라면 어떤 기쁨이 그리도 큰지 알 수가 없습니다. 겨울 숲에 생명이 가득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이런 작은 나뭇가지와 수없이 많은 풀잎이 하늘을 향해 서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겨울 숲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은 생명 한 가운데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 가까운 곳에 숲이 있고 나무가 있습니다. 밋밋하여 볼 것이 없고 죽은 것처럼 보이는 겨울산과 숲. 그런 산과 숲으로 가 봄을 기다리는 멋스러움, 우리가 겨울에 누릴 수 있는 작은 기쁨 중의 하나입니다. 숲 해설가들이 한 겨울에도 산과 숲으로 가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