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픈 역사생활글/생활 속에서 2021. 3. 1. 10:53
알려진 대로 안중근 의사는 “고국에 묻히고 싶다”고 유언했다. 그러나 유해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왜 제사도 못 지내고 있었을까. 여기엔 심란한 가족사가 숨어 있다.
안중근 의사는 부인 김아려(김마리아·1878∼1946) 여사와 2남 1녀를 두었다. 1910년 하얼빈 의거 이후 유족은 긴 세월 중국을 떠돌며 어려운 생활을 했다. 장남 분도(1905∼1911)씨는 일곱 살 나이에 중국에서 급사했다. 독이 든 과자를 먹고 죽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중국에서 근근이 살던 차남 준생(1907∼1952)씨는 끝내 일제의 회유에 넘어갔다. 1939년 10월 17일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신사 ‘박문사’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이토 히로쿠니와 함께 참배하고 아버지 죄의 용서를 빌었다. 이후 유족은 일제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했다. 장녀 현생(1902∼1959)씨도 막내동생의 ‘박문사 사죄’를 지원했다고 알려진다. 준생씨가 1952년 부산에서 숨진 뒤 그의 가족은 미국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중앙일보, 2021년 3월 1일,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면 안되었고 아버지께서 하신 일을 부인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가족의 슬픔이다. 길을 잃어버린 양을 내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반응했던 교회의 슬픔이다. 국민을 보호하고 변호해 주지 못하고 방치한 힘없고 가난한 국가의 슬픔이다. 슬픈 역사를 껴안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다. 진정 화해와 용서가 필요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