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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것과 '새' 것은 이 세상을 인식하는 모든 정서와 감각의 영원한 양극입니다. 우리는 낡은 것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낡은 것 안에는 우리의 과거, 우리의 지혜, 우리의 기억, 우리의 슬픔, 우리의 현실 감각이 모두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새 것에 대한 믿음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새 것 안에는 우리의 활기, 우리의 낙관 능력, 앞뒤 가리지 않는 우리의 생물학적 열망, 화해를 가능케 하는 치유 능력으로서의 망각 능력이 모두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면은 새 것을 불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강하게 발달한 내면은 새 것에 저항할 테죠. 우리는 낡은 것이냐 새 것이냐를 선택해야 한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만, 사실 둘 다 선택해야 합니다. 낡은 것과 새 것의 끊임없는 타협이 아니라면 도대체 인생이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보기에 사람들은 이런 경직된 대립에 아랑곳 하지 않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야만 합니다.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이재원, 이후, 2011, 205-206. "문학은 자유다" 중에서)
☞ 2003년 수전 손택이 독일출판협회가 주는 '독일출판협회 평화상' 시상식에서 "문학은 자유다"라는 제목으로 했던 강연의 일부다. 낡은 것과 새 것은 공존한다. 낡은 것이 새 것에 자리를 내어주고, 새 것이 낡은 것을 밀어내면서 생명이 지속된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이사 11, 1). 낡은 것과 새 것의 역동적인 관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강력한 이미지다. 낡은 것은 친숙한 것이고, 습관화된 것이고, 그래서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내 어깨를 으쓱하게 했던 성공이고, 차마 버릴 수 없는 기억으로 가득한 멋진 날이고, 깊이 정들었던 관계여서 그것 없이 내가 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새 것은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머물고 있던 자리에서 미련없이 떠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마음속에 있는 걱정과 두려움을 설렘과 기대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낮과 밤이 한 날을 이루고 있고, 올라감이 있어 내려감이 있듯이 낡은 것과 새 것이 공존한다. 떠나가는 낡은 것에 정중하게 인사하고, 새로이 다가오는 것을 정중하게 맞아 들여야 한다. 떠나가고 다가오는 것이 어떤 것이 되었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