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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라는 여자. 오십대 중반이다. 잘나가는 학원강사에서 지금은 변두리 지역 학원을 전전하고 있다. 오빠가 한 명 있다.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회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얼마 전에 해고되었다. 동생 현정이는 결혼하여 미국 뉴저지 대학에서 교수로 살고 있다. 아빠는 멋쟁이 교수였지만 미투 비슷한 것으로 징계를 받고 이 여자 저 여자를 건드리면서 폐인처럼 살다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 엄마는 아빠와 이혼하여 미국에 있는 현정 곁에서 살고 있다.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아빠를 보면서 현주는 아빠에 대한 기억을 소환한다.
현주는 어렸을 때부터 '아빠의 딸'이었다. 이것이 가족들 사이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현주가 대학교 입학 시험에 합격한 다음, 아빠와 한 달 동안의 유럽 여행을 하고 나서 부터였다. 감정적으로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아빠에게 철저하게 매여있었다. 아빠 또한 현주를 딸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현주에게 아빠는 삶의 가르침을 주는 근엄한 아빠, 세상 풍파로부터 자기를 켜주는 보호자, 학문과 철학과 예술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상대였다. 이런 아빠였지만 가족들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가족들은 현주에게도 그런 아빠로부터 벗어나 네 삶을 살라고 말하곤 했다. 김영하의 소설 <오직 두 사람>의 대략적인 이야기다.
어떻게 하다보니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본인이 자유로이 선택했던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냥 주어진 것이 있다. 일시적인 관계로 충분한 것이 있는가 하면, 어느 한 쪽이 세상을 그만둘 때까지 지속되는 관계도 있고, 죽고 나서도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질기디 질긴 관계도 있다.관계로부터 주어지는 기쁨과 행복이 있다. 결혼이 그러하고 아이 출산이 그러하다. 그렇지만 관계로부터 주어지는 고통 또한 얼마나 크던가. 그런 관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사람에게 충고를 하고 풀려나는 방법을 제시하지만, 그 관계라는 것이 칼로 무우를 자르고 두부를 자르듯이 되는 것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관계맺음을 통해 너와 나만의 세계가 형성된다. 그 누구도 그 관계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관계맺음으로 홀로인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고, 관계맺음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자유로움이 있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서 홀로서려는 외로움을 견뎌내야만 한다. 철저하게 홀로이지 않은 상태에서의 관계맺음과 연대는 굴레이다. 모든 관계맺음은 상대방을 자유롭게 해주려는 것으로 나가야 한다. 그것이 어떤 관계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