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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생활글/생활 속에서 2020. 11. 15. 23:07
쉬는 날에 대한 기준이 저마다 다를 것이다. 나에게는 늦잠자는 날이 쉬는 날이다. 눈이 떠질 때까지 잠을 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그 전날 일부러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든다. 늦잠을 자기 위해 늦게 자기도 하지만, 깊은 밤에 정신 집중이 잘되어 일의 능률이 오르고, 밤의 고요와 적막감이 좋아 잠을 자기에 아깝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늦게까지 있을 수가 없다. 늦잠을 잘 수 없는 쉬는 날은 반쪽짜리 쉬는 날에 불과하고 평일과 다름없다.
아침 식사도 먹지 않고 잠을 잤다. 혼자 적당한 시간에 미사 봉헌하면 되기 때문에 시간에 쫒길 이유가 없었다. 혼자 미사 봉헌할 때는 말씀과 미사경문의 어떤 부분에 대해 오랫동안 머물기 때문에 아주 늦어지는 때가 있다. 미사경문에 이런 내용이 있었나 싶게 아주 새롭게 와 닿는 때가 있는 것이다. 경문의 각 단어를 마음에 새기며 천천히 드린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경문의 의미가 새롭게 와 닿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의구심이 들 때도 많다. ‘산이와 죽은이’. ‘새로운 계약’’, ‘죄 사함’ 등. 일상에서 수없이 썼던 단어지만 정작 그 의미가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 보지 않은 말들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고 듣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신앙의 언어는 어떤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단어와 말을 만들어 낸(고정시킨) 사람과 같은 체험을 할 때만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모든 기도문의 언어는 묵상해야 할 것이다.
이곳에 올 때마다 찾아가곤 했던 스승 예수 상이 있는 곳에 갔다. 이 예수 상을 1986년에 세웠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그 해는 내가 수련을 시작한, 상당히 오래 전의 일인데. 그때에 이렇게 큰 예수 상을 어떻게 이곳까지 옮겼을까. 이곳에 처음 왔을 때, 헬리콥터로 옮겼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누가 그런 생각을 해 냈는지, 헬리콥터를 부를 만한 힘을 가진 사람이 누구였을까.
예수님의 십자가 길에 대해서 여러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십자가의 길 기도 뿐 아니라 자기만의 십자가 길 기도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상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고 내려오면서 한 생각이었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골목길을 잠깐 걸었다. 늦은 가을의 저녁 캄캄한 것이 당연하 것이지만, 아주 캄캄했다. 군데 군데 켜진 가로등 때문에 더 캄캄하게 여겨졌다. 사람들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았다. 가끔 개가 짖긴 했지만 기를 쓰고 오랫동안 짖지 않았다.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고 너가 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줄 만큼만 짖었다.
성당에 한 시간 앉아 있다가 들어왔다. 여러가지 생각과 생각이 떠돌아 다녔고, 마음이 모아지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했다. 생각을 언어로 고정시켜 보려고 했고,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의식하기 위해 형상화 시켜보기도 했다. 특별한 불꽃은 없었지만, 한 시간의 머뭄과 머물렀던 공간을 봉헌했던 것으로 충분했다. 한 시간을 붙잡아 두고 있었는데, 성당을 떠난 그때부터 붙잡아 두었던 그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