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의 언덕생활글/생활 속에서 2020. 8. 14. 21:23
수도원 뒤편에 있는 언덕을 바람의 언덕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무덤이 몇 기 있어 나무 없는 공간이 제법 넓습니다. 계절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대청봉이 보입니다. 멋진 석양을 자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가을 석양을 가장 좋아 했습니다. 가슴 저 밑바닥까지 파고 드는 싸한 느낌이 좋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지금처럼 자리기 전에는 동해가 보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나무와 나무 사이로 언뜻 보일 뿐입니다. 커다랗게 자란 나무의 듬직함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습니다. 저녁에 별을 보기에 아주 좋은 것입니다. 바로 옆에 무덤이 있어 으시시하긴 합니다만. 별자리에 대해 알고 있으면 별을 보기가 훨씬 재미있겠지만 지금은 '별이 많네'라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망원경을 구입해서 별을 봐야 하는 것 아니야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 자리 그 시간에서만 누릴 수 있는 주어진 복이 있거든요.
저녁 식사 후에 이 언덕에서 태백산맥과 한계령을 가득 채운 먹구름을 보았습니다. 구름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바람처럼 빨리 움직이지는 않았습니다. 구름을 보며 즉시 이름을 붙여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한참을 생해야 합니다. 이름짓기가 쉽지 않은거죠. 바람이 더위와 후덥지근함을 몰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거센 바람에도 불구하고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습니다. 여름을 떠나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는 소리입니다. 모르죠, 짝을 찾으면서 내는 소리인지. 길가에 앉아 여러가지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바람의 언덕'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자기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대로 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훗날 자기가 쓴 글을 읽으면서 그때 느꼈던 것을 기억할 수 있기만 해도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