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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화요 오후반기도.영성/다네이 글방 2020. 6. 11. 11:40
6.9 화요일 하루동안 카톡방에서 '나무 다시 보기를 권함'에 대하여 7명이 서로의 독후감을 글로 나누었습니다~
* 인류는 오랜 세월 숲을 이용하고 나무와 함께 살아 왔다. 어쩌면 나무는 인간에게 가장 영향력이 큰 종(锺)이 아닐까요.
나무의 삶이 사람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놀랍네요. '나무의 언어로 자연을 다시 보라'는 저자의 일관된 논리에 깊이 공감한다 . 하지만 집에 정원이 있든지 아니면 집 바로 옆에 숲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나무의 서식환경이 나날이 악화되어 가는 도심에 사는 이들에게 페터 볼레벤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큰 간격이 있었다.* 책을 보면서 너무 모르니까 힘들게 읽었다. 뒷산 산책할 때에도 나의 운동에만 목적이 있었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달라지고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수관 수피 캘러스 (나무옹이)등을 눈여겨 보았고 잎이 누렇게 상한 나무도 꽤 있어 마음이 아팠다. 가지치기가 나왔을때는 흥미가 있었다. 친구 과수원에서 왜 겨울철에 가지치기 하나 했는데 책을 보니 수액이 나오기 전에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산책하며 나무에 애정을 갖고 이웃 친구로 잘 지내야겠다고 다짐한다.
* 계절의 변화에 따라 꽃도 피고 열매도 맺으면서 겨울에는 죽은 듯 앙상한 가지만 있던 나무들이 봄에는 새싹이 돋는 자연을 보며 하느님이 주신 신비라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살아 왔다. 나무들도 자기들만의 언어로 통하고 같은 종의 나무들끼리는 싸우지 않고 똘똘 뭉치고 도와 주고 아픈 나무가 있으면 건강한 나무가 섬세한 뿌리 네트워크를 통해 선물로 당을 흘려 보내주면서 서로 살아간다거나, 둘이 꼭 붙어 살던 나무 커플중 하나가 죽었을 때 죽지 않고 살아 남은 나무가 죽은 나무의 그루터기를 돌봐 준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후손들을 위해서 양분을 끌어 올려 놓는 것은 자식을 위해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인간의 삶과 견주어 보게 한다.
* 새로 알게 된 나무지식들로 무심히 보아 넘기던 나무를 이제는 유심히 보게 되었다.
- 자작나무는 충동적이고 저돌적인 성향으로, 수명이 120세로 짧다
- 두 나무가 공동으로 사용하던 근계에 나무그루터기로 균류가 침입하면 한 나무가 죽고 친구나무도 뒤따라 죽는다.
- 보통 나무에 불길이 옮아 붙더라도 부드러운 줄기 속 조직은 내부온도를 차갑게 유지하고 있어 나무가 산불에 살아 남을 수도 있다고 한다. 놀라왔다.
- 소심하고 급한 성질을 가진 나무는 수령이 짧고, 인내심 있고 천천히 반응하는 나무는 수령이 길다.
- 건강한 나무의 나뭇잎이 떨어지는것은 배불러 그만 일하고 쉬겠다는 뜻이다.
-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다음 해엔 꽃을 더 많이 피워 자손번식을 하려한다.
- 씨앗을 일부러 맛있는 과피로 만들어 새나 동물을 통하여 멀리 전파한다.
- 향기로 곤충에게 꽃꿀이 있음을 알린다.
- 천적 나무좀으로부터 보호히기 위해 수피로 송진같은 방어물질을 방출한다.
- 뿌리 네트워크로 친구 나무와 정보를 주고 받는다
- 정원수 나무를 베다가 부주의로 수피가 벗겨 드러나면 나무도 화상을 입어 평생 고생한다.
- 다만, "나무는 고통과 분노를 표현하는 신호를 내뿜는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는 말이 좀 이해가 안 되었다. 무언가 있을 것 같다.* 살아 온 시간을 되뇌이면서 천천히 걷고 생각하면서, 자연을 아주 섬세히 보고 즐기면서,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사랑을 느끼면서 꽃들과 마주하면서 나무들과 대화하면서, 어릴 적에 당연하게 여겨왔던 자연을 내 옆에 되찾은 듯하다. 숲속에서 강가에서 바다에서, 살아 있다는 강렬한 느낌이 온다. 코로나가 나무 책읽기와 함께 이토록 큰 기쁨을 주고 있다.
* 숲속에서 나무옹이 보기를 즐긴다. 다양한 옹달샘 같아 유심히 들여다 보기도 하고 옹이만의 사진을 찍는 습관도 있다.
옹이 안에서 추상 창작을 찾곤 한다. 나무이야기에서 옹이에 대하여 읽으면서 왜 썩어서 텅빈 안타까운 옹이가 생겨났는
지도 알게 되었다.* 나무를 다시 보라는 권유인 데 사람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돌아보면 나는 사람 사이 비언어적 소통에 매우 둔감하였던 것 같다. 말로 표현되는 것으로만 이해하려 했고 기분이나 긴장상태나 몸짓등은 아예 알려고 하지 않고 차단하며 살아 온 것 같다. 식물을 알아 가는 것보다 시급한 게 이러한 사람에 대한 나의 단순 대응을 고쳐나가는 것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실내에서 가족이 걷는 발자국 소리, 숨소리, 얼굴 표정, 말의 억양, 눈빛, 한숨, 경직된 침묵 이런 소리없는 소리를 듣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 나무의 죽음을 사람과 연결해보지 않았는데 나무도 죽음을 알고 죽음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나무언어로 생각하니 거룩함을 느끼게 한다. 땅위로 보이는 뿌리를 보며 지난 세월 나무의 아픔을 생각해 보았다. 나무가 견뎌내며 자신을 지켜온 삶이 거룩하다. 죽은나무가 땅 속 영양분을 자식 나무들을 위해 위로 끌어올리듯이 사람들의 죽음도 영적으로 연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의 언어로 자연을 이해한다면 먼저 자신과 사람을 이해하는 좋은 마음들로 확장될 것 같고, 세상 어디에나 심어 놓으신 그분의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 비대면 카톡 모임이 말로 하는 것 보다 글로 쓰자니 힘들지만 힘든 만큼 더 깊이 더 확실히 내 지식과 지혜가 되는 장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얼굴 보며 말로 할 때에 순간 이해될 수 있는 것들을 일일이 글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그래서 6.23 다음 모임은 사개월 만에 얼굴 보며 나무 읽기에서 배운 비언어적 소통의 깊이를 사람나무에서 느껴 보기로 하였습니다~^♡^
* 6.23(화) 다네이글방은 명동성당 뒤편 야외벤치에서 10시반부터 글나눔하고 점심과 차 나눔하기로 합니다~
이번에는 뵐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한 프란치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