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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 일요일
그 사람이 발 딛고 있는 처지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으면서 그 사람 개인에 대해서, 그 사람의 생각에 대해서 관여하려는 것은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의 생각은 결국 자기가 겪은 삶의 결론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개인에 대한 이해는 그가 처한 처지와 그 개인을 함께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인식은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상과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 그 자체가 기본적인 인식 평면과 시각을 결정한다는 것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관계가 성립되고 나면 전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무엇보다 생활 그 자체가 매우 편해집니다. 사람들 속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니까 그런 거지요. 편하다기보다 참으로 튼튼한 느낌을 갖게 돼요. 발밑이 튼튼한 안정감으로 갖게 되지요.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신영복, 돌베게, 2017)
☞ 다른 집에서 제삿상 차리는 것을 보며, '감 놔라 대추 놔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적절한 관계도 형성되어 있지 않는 상태에서 상대방의 선택과 결정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 조심해야 합니다. 설혹 자신에게 '어찌 하오리까'라고 충고와 도움을 요청하는 때라도 그렇습니다. 상대방이 답을 요청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아직 답을 찾지 못해 답답함을 말 할 뿐이라고 생각하면 거의 틀림없습니다. 세상살이의 어려움에 대해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마다 자기가 받은 삶의 문제지를 풀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과 함께 풀어야 할 문제지가 더 많습니다.
개인의 문제지를 풀 때는 자기자신에게 진솔함이 필요합니다.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자지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봐야'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풀어야 할 문제지 앞에서는 자기 포기와 내려놓음을 전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긴장과 갈등과 싸움으로 번지게 됩니다. 자기 혼자, 혹은 다른 사람과 풀어도 풀리지 않는 문제지 앞에 설 때도 많습니다. 삶은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자신들의 한계를 알고 삶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이라고 해도 됩니다. 죽을 때까지 삶에 대해 응답하면서 죽을 때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문제지 앞에서 고민하도록 살라고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