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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0일, 목요일
『믿음의 역동성』, 폴 틸리히/최규택, 그루터기하우스, 2010
(토마스 아퀴나스는) 믿음은 의지의 행위에 의해 보완되어야 하는 증거가 불충분한 행위라고 했다. 그의 이런 생각은 믿음은 제한된 증거를 가지고 있는 지식의 행위로서 이해되어야 하며, 불충분한 증거는 의지의 행위를 통해 보완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가톨릭 신학에서 '믿겠다는 의지'는 인간의 노력을 기초로 한 행우가 아니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은혜로서 주신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감동시키셔서 교회가 가르치는 진리들을 받아들이도록 하신 것이다. 교회는 이와 같이 지적인 것이 의지적인 것에 의해 보완된 믿음의 성격에 권위를 부여했다.
(믿겠다는 의지의 개신교적 이해는) '믿음의 순종'을 요구한다. 이 용어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궁극적 관심의 상태안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헌신의 요소를 의미한다. 다른 것은 예언자적, 사도적 가르침에 의해 믿으라고 주어진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씀이 예언자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의심이 들어간다면 '믿음의 순종'은 그 의미를 상실하게될 것이다. 그것은 자의적인 것, 즉 '믿겠다는 의지'가 되어 버린다. 인간의 의지 자체는 선할 수 있지만 그것을 통해 믿음을 창조할 수 있다는 생각은 거분해야 한다. 유한한 인간은 무한한 관심을 생성해낼 수 없다. 우리의 요동치는 의지는 믿음에 속해 있는 확실성을 생성해 낼 수 없다. (7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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