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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땜생활글/생활 속에서 2019. 9. 12. 11:12
9월 12일, 목요일
지갑을 잃어버린 것을 안 것은 지난 토요일이었습니다. 외출하거나 여행할 때 지갑을 챙기는 버릇대로 지갑을 찾았습니다. 흔히 두는 곳에 없어 이곳저곳을 뒤졌습니다. 자동차에 두었나 싶어 자동차에도 가 보았습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었습니다.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잃어버린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디서 언제 잃어버렸을까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중 하나 의심스러운 곳은 솔비치에 있는 '엘비노'라는 레스토랑이었습니다. 8월 마지막 날, 생일을 맞는 형제가 있어 생일 파티하기 위해 갔던 곳이었습니다. 이곳 산골에 살면서 함께 외식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고, 지난 7월과 8월 너무 바쁘게 지냈고 열심히 일했던 우리 자신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하며 멋지고 값비싼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약간 비싸겠지만 얼마 전에 은인이 주신 돈과 공동체 돈으로 지불하면 충분할 것이었습니다. 그때 나가면서 바지 주머니에 지갑을 넣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솔비치 콘도안에 있는 엘비노의 전망은 아주 좋았습니다. 넓고 화려하고 깔끔한 내부장식과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에피타이저로 샐러드를 주문하고, 빠스타를 먹고 스테이크를 먹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포도주는 기본으로 하고, 양이 부족하면 빠에야를 더 주문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일하는 분이 오셔서 우리 이야기를 듣고 메모를 했고, 메모한 것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분위기가 바뀌면 대화 주제나 대화의 질도 조금 바뀌는 법입니다. 그렇지만 거의 언제가 함께 기도하고 일하고 식사하는 사람들이어서 색다를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기분은 조금 업되어 있었습니다. 생일 축하와 케익 절단은 저녁에 집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다 큰 남자들 세 명이서 축하식을 하기가 뻘쭘하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재미있게 이야기 하면서 음식을 기다렸습니다. 바지에 있는 지갑이 귀찮아 옆에 있는 빈의자에 올려놓았습니다.
포도주가 나왔고 샐러드가 나왔고 빠스타가 나왔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맛있었습니다. 빠스타안에 스테이크 비슷한 것이 들어가 있어서 맛있는가보다 하면서 먹었습니다. 값만 비싸고 요리른 그저그런 곳도 있었거든요. 다음 차례인 스테이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스테이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일하는 사람을 불러 물었습니다.
"스테이크 안 주세요?"
"스테이크 나왔는데요..."
"언제요?"
"빠스타와 함께요."
빠스타와 스테이크를 따로 주문했는데, 직원은 스테이크가 들어가 빠스타로 알아들은 것입니다. 빠스타와 스테이크를 따로 먹으면 돈이 꿰 비싸거든요. 돈이 많아 보이지 않은 행색을 보면서 자기 알아서 그렇게 주문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쩝. 빠스타 하나만 가지고는 배가 고팠습니다. 다시 스테이크를 두 개 주문했고 그것도 부족할 것 같아 빠에야를 하나 더 주문했습니다. 후식으로 과일이나 커피 등을 주는 것이 예사여서 "커피는 주나요?"라고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커피는 옆에 있는 커피숍에서 마시는데요." 헐! 공동체의 유다 형제가 계산을 했고 솔비치 바닷가를 거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의자 위에 놓아 둔 지갑을 잊어 버리고 그냥 나와버렸을 것입니다.
엘비노에 전화했습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지갑이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현기증이 조금 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지갑안에 중요한 것이 많이 들어있었거든요. 9월 용돈으로 받은 돈과 추석 본가 방문을 위한 교통비와 지난 달 쓰다남은 용돈과 지난달 10만원 충천한 티머니와 체크 카도와 운전 면허증과 나에게 의미가 있어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사진 두 장과 행운의 1달러 지폐가 그 안에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체크카드 회사에 전화했습니다. 얼만 안되는 돈이지만, 지불정지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이고 ARS로 하는 일이어서 조금 복잡했습니다. 은행에 마지막으로 결제된 내용도 알아 보았습니다. 지갑을 주은 사람은 현금만 가져간 것 같았습니다. 그 다음부터 조금 불편했습니다. 서울가서 새로운 티머니 카드를 샀고 이번에는 5만원만 충전했습니다. 식당에서도 현금으로 지불했습니다. 돈 쓸 일이 좀 있었지만, 현금을 가져갔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돌아오면서 면 사무소에 들러 주민등록증을 새로 발급받기 위해 무엇인 필요한지 알아보았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주민등록증은 설합에 보관하고 있었더라고요.
어제 재발급 신청한 카드를 수령했습니다. 주민등록증을 지참하고 경찰서에 가서 운전면허증 재발급을 신청했습니다. 10일 정도 지나 찾으러 오라고 했습니다. 지난 몇 일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액땜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무엇에 대한 액땜인지는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