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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흔적생활글/생활 속에서 2019. 9. 8. 22:06
9월 8일, 일요일
태풍의 흔적을 보았습니다. 마당에는 빗자루와 쓰레기통과 택배로 보낸 물품을 포장했던 스치로폼들이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큰 화분에 심어놓은 등나무가 넘어져 있습니다. 파란 은행잎과 익지 않은 푸른 은행이 마당에 즐비했습니다. 푸른 은행잎에 눈이 갔습니다. 푸름을 자랑하고 마음껏 즐겨야 할 젊은이가 땅에 떨어져 뒹굴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서리를 맞은 꽃이 있습니다. 탐스럽게 익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내어 주어야 할 때가 아닌데, 땅에 떨어진 과일이 있습니다. 호기롭게 뭔가 시작하고 자신의 뜻을 펼져야 할 나이에 허리가 꺾여 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깊은 상처와 흔적일 것입니다. 성장통이라고 하기에는 정도가 심한 아픔과 고통의 순간입니다.
자신의 힘만으로 견뎌낼 수 없는 태풍을 벌거벗은 몸으로 맞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삶의 근간이 흔들리고, 삶이 혼란스럽게 되고, 혼신의 힘으로 쌓아왔던 것들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망가질 때가 있습니다. 삶에서 만나게 되는 태풍이 남기고 간 자욱과 흔적이 있습니다. 먼 훗날 그것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깊은 어둠속에 있는 것입니다. 늦가을, 사람들의 눈을 황홀케 하는 노랗고 황금빛의 은행잎이 아니라 아직까지도 어린애와 같은 파란 은행잎을 쓸면서 처연한 느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