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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불씨 외로움원고글/영혼의 동반 2010. 10. 21. 20:09
"외로워 외로워서 못 살겠어요" 라고 시작되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 가수는 자신의 외로움과 우리들의 외로움에 대해서까지 노래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저도 한 때 ‘외로워서’ 몸과 마음이 황폐하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30대 후반에 저희 수도회의 총본부가 있는 로마에 잠깐 머물렀습니다. 소위 말해 외국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까지 해외라곤 제주도 밖에 가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신이 났습니다. 보고 듣는 것이 모두 새롭고 신기했기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밥과 김치에서 나오는 힘이 다 빠져 나가고, 주변의 것들이 눈에 익게 되고, 함께 사는 사람들이 저를 그들 삶의 한 부분으로 생각할 때 쯤 어려움이 몸으로 와 닿기 시작했습니다. 몸과 마음은 어른이지만 어린아이처럼 생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아주 힘들었습니다. 이런 외적인 어려움과 더불어 신체 연령과 수도 연륜에서 오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한꺼번에 다가왔습니다. 저와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이 표현하기 어려운 외로움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먹고 자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몸이 아프게 되었고, 하루하루 산다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쉽게 이해되지 않는 글로 공부한다는 것도 고역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 등의 말도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치루어야만 하는 시험에 대해서는 더 더욱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예상 문제를 알려주고 모범답안을 얻었어도 준비하는 것이 버거웠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구두시험을 보려고 교수 연구실 앞에 서 있는 제가 초라하게 보였습니다. 교수님이 저에게 무엇을 묻는지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답답했던 그분이 무엇을 질문했는지 어떤 답을 원했는지 천천히 말씀을 해주셔도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지만 상호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부족한 말이지만 그분과의 사이에서 많은 것들이 오고갔던 것 같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재시험이나 과락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 모든 어려움의 시간들이 다 지나갈 것이라고 말하며 어깨를 두드려 주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부끄럽고 창피할 것도 눈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홀로였던 그날 밤에 외로웠습니다.
이런 어려움이 있었지만, 공부를 마무리하면서 써내야 하는 과제까지 면제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경우에 어떤 주제에 대해서 써야 하는지는 학교 다닐 때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가장 자신있게 할 수 있고 가장 할 말이 많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에게는 ‘외로움’이었습니다. 외로움과 관계되는 책들을 읽어가면서 외로움에 대해서, 저와 저자신의 삶에 대해 깊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 삶의 밑바닥에 외로움이 자리잡고 있고, 제가 얼마나 외로움에 취약한 사람인지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외로움이 변덕스런 느낌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에 깊은 영향을 주며 하느님을 찾게 하는 강한 내적인 힘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생활속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책에서 말하는 외로움과 싸우면서 몇 년을 지내다 보니, 어느 날 그 외로움의 숲을 빠져 나와 있는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숲에서 빠져 나왔을 때 숲을 더 잘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곳 어디든지 외로움이 있습니다. 외로움은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는 어린아이의 손에,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돌아오는 학생의 어깨 위에, 상사에게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는 사무실 직원의 서류 위에 그리고 대문 밖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고보 있는 노인들의 눈가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현대인을 위협하는 심각한 질병 중의 하나가 외로움이라고 했습니다. 외로움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황폐하게 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게 하며, 심각한 범죄의 큰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외로움이 자신의 삶에 더 진실되이 응답하게 하며,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의 정을 더 깊게 해줍니다. 더불어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사랑의 불씨를 되살아나게 하고, 하느님을 향한 불길이 꺼지지 않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만화가 있습니다. 홀로 살고 있는 외로운 노인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일흔 여섯 살 된 김만석이라는 할아버지가 계시는데, 부인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자녀들과 함께 살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오토바이로 우유를 배달해 주며 사는 분입니다. 같은 동네에 송씨라는 할머니도 계셨습니다. 이 할머니는 어렸을 때 마을 청년과 함께 서울로 도망쳤지만 결혼생활이 순탄치가 않아 가족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파지를 모아 판 돈으로 어렵게 살고 계셨습니다. 이 두 분이 매일 만나면서 서로 관심을 갖게 되고 걱정을 해 주면서 밖으로 드러날 듯 말 듯 한 사랑이 시작됩니다. 이런 관계를 알고 있는 할아버지의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송씨 할머니에게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우리 나이에서 여자한테 ‘당신’이라는 말은 여보 당신 할 때의 ‘당신’이다”라고 말하면서 주저합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부인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부인의 묘지에 가서 고민하고 마음속으로 부인의 허락을 청합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송씨 할머니에게 ‘당신’이라고 하지는 못하고 “그대를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와 비슷한 외로운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분의 어머니께서 10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홀로 된 그분의 아버지께서는 자녀들과 함께 사시면서 오토바이로 택배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이 아버지께서 어떤 모임에서 당신과 비슷한 나이인 홀로 사는 여자 친구를 만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분을 가족들에게 소개하셨고 가끔 당신 집으로 초대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아는 분의 가족이 서울에서 동해안으로 여행을 하기로 했답니다. 그런데 그분의 아버지께서 당신은 오토바이로 물건을 배달해 주고 갈테니 먼저 가라고 하시더랍니다. 다음 날 아버지께서 동해안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오셨는데 오토바이 뒤에 아버지의 여자 친구가 타고 있더랍니다. 일흔 가까이 되신 두 분이 젊은이들도 힘들어 하는 오토바이를 타고 그곳까지 오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갈망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갈망이 모두 채워지지는 않습니다. 채워지지 않은 부족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 우리에게 외로움으로 다가오고 이 외로움 때문에 다른 사람을 찾고 하느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밤을 세워가며 야경꾼들에게 “내가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아가 3, 3)라고 묻게 되며, “인장처럼 나를 당신의 가슴에, 인장처럼 나를 당신의 팔에 지니셔요.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 정열은 저승처럼 억센 것. 그 열기는 불의 열기 더할 나위 없이 격렬한 불길이랍니다. 큰 물도 사랑을 끌 수 없고 강물도 휩쓸어 가지 못한답니다.”(아가 8, 6-7)라고 말하게 됩니다.
하느님이지만 사람이 되어 땅으로 오신 예수님도 외로우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외로운 삶을 통해서 사람들을 더 깊게 이해하셨고,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으며, 그들의 아픔과 고통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로웠던 사람들은 이런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그분을 따랐습니다. 외로움이 주님과 사람들을 하나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의 불이 계속 타오르게 하는 불씨 역할도 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루카 12, 49)라는 당신의 말씀을 겟세마니 동산의 외로움과 십자가 위에서의 외로운 죽음을 통해서 완성하셨습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말처럼 외로움이 참된 나를 만나게 하고 참사람인 주님을 만나게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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