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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쫘~악기도.영성/다네이 글방 2013. 3. 29. 12:26
3월 29일, 금요일
열심히 읽고 계시죠?
책읽기도 음식 먹는 습관과 같아 다양하지요?
‘양’으로 승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질’을 중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나서 새로운 책을 시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밑줄을 그어가면서 읽고 그 옆에 자기 생각을 적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 읽었다고 하는데 새 책과 같이 깨끗한 사람이 있습니다.
밑줄을 그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옮겨 적고
옮겨 적은 것을 가끔 읽어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런 것들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밑줄은 많이 긋는 편입니다.
대부분이 수도원 도서관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밑줄을 긋는 것이 문제이긴 합니다만.
독서노트에 옮겨 적는 것은 많지 않고,
옮겨 적은 것을 자주 보는 편은 아닙니다.
가끔 독서노트를 보면서
‘내가 이런 책도 읽었고 이런 구절도 옮겨 적었던가’라고 놀라는 때가 많거든요.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는다는 것은
그 부분이 자기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금방 설명할 수 있을 때가 있고
‘그냥’ 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때가 있지만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이유를 빨리 설명 할 수 있든 없든,
밑줄 친 그 부분이 어떤 형태로든 나와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일상심리학에서 흔히 말 하는 것처럼
그 부분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내 삶과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 와 닿았다’는 것이고,
바로 이것 때문에 밑줄 친 부분이
심층적인 책읽기에로 나아가는 실마리이고
그 책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어 가기 위한
하나의 문이 될 수 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책을 이런 방법으로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재미와 흥미 위주로 읽을 수 있으며,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대충 훑어보기 위해서 읽을 수 있고,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새로이 보게 하고
우리를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책읽기가 없다면
책읽기가 하나의 물품을 소비하는 형태로 되어 버려
금방 책읽기의 한계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고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갈 수있게하는 책읽기는
우리 교회 안에 “영적 독서”라는 이름으로 이미 자리 잡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꾸준하게 실행해 오고 있었습니다.
문제라면 현대인들의 책읽기가
지나치게 효율성을 따지고 정보를 습득하는 것에로만 치우쳐 있어
이런 ‘영적 독서’의 방법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만.
어떤 책을 ‘영적 독서’로 사용할 수 있는가?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책들은 교회에 널리 알려져 있는 ‘고전’입니다.
그렇지만 꼭 이러한 책이 아니더라도
인간과 하느님과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하고 진솔하게 쓴,
일반서적들도 얼마든지 ‘영적 독서’로 사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심층적이고 적극적인 (영적)독서에로 나갈 수 있는가?
복음 묵상을 해 보셨거나, 복음 나누기를 해 보신 분들이라면
그때의 과정이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첫 째, 책을 읽다가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있을 때 밑줄을 긋습니다.
일고 있는 책의 내용 전체를 가지고 심층적인 독서에로 갈 수가 없기 때문에
밑줄 친 어떤 한 부분만을 가지고 자신과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좀 더 깊게 나아갈 수 있는 자료로 삼는 것입니다.
둘 째, 밑줄 친 부분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거룩한 독서에서의 새김질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셋 째, 밑줄 친 부분과 자신의 내적인 상태나 외적인 삶과 연결시켜 보는 것입니다.
넷 째, 이것을 가지고 주님과 함께 내적으로 대화합니다.
다섯 째,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가 자기를 설득하고 이해시킬 수 있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봅니다.
여섯 째, 이 이야기를 글로 써 봅니다.
일곱 째, 다른 사람과 나눕니다.
여러분들이 가장 힘들어 하실 부분은,
‘글쓰기’의 어려움을 제외하면, 셋 째.넷 째.다섯 째 부분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밑줄친 부분과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었던 것들이 ‘짝을 짓는’ 시간이고
이것을 구체화 해 가는 창조의 과정이고
자신과 하느님에 대해서 새롭게 알아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렵고 고통스런 과정이지만
영적독서와 적극적인 책읽기의 핵심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물러서지 않고 맞대면 하면서 극복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따라 ‘산고의 고통’이 필요할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언급되어 있는
내용과 순서 그대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마음속에 품고 책읽기를 한다면
좀 더 심층적이고 적극적인 영적인 책읽기로 될 것입니다.
사족이지만,
이런 책읽기의 전체적인 과정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에
부드럽고 겸손한 마음으로 해야 하고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책을 읽고
밑줄친 부분을 묵상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면서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주님 부활을 사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부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