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나라 사람들, 조선시대나 고려시대 더 거슬러 올라가서 삼국시대 사람들은 어떤 말을 사용했을까.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말과 아주 달랐을 것이다. 요새도 우리나라 지역마다 사투리가 있어 억양이나 단어와 표현법이 다른 경우가 있고, 제주도는 아예 다른 말처럼 들린다. 통일된 글이 있었다면 말이 달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한글이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글의 역사는 비교적 짧다. 구한말 시대부터 조금씩 한글을 사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제가 우리나라 말과 글을 없애려고 하면서, 오히려 우리나라 글과 말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처럼 보인다. 한강이 쓴 <작별하지 않는다>에 많이 나오는 제주말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우리나라 글의 역사가 이렇게 짧은데도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탔고, 노벨 문학상 작가의 책을 번역본이 아니라 원어로 읽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인간의 언어는 역사의 제약을 받고 있고 또 다르게 구성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 존재자는 결코 시간과 문화로써 한정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알려지지만 또한 역사를 능가합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신앙과 이성> 95항)
그렇다면 한강은 광주의 5.18과 제주의 4.3을 다루는 소설을 썼지만, 고유명사로서의 광주나 제주가 아니라 일반명사인 광주와 제주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쓴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이 세상 어디에서나 일어났던 그리고 일어날 수 있는 폭력과 학살의 희생자들과 가해자들, 과거와 현재의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쓴 것이다. 그리스도교적인 표현을 빈다면, 폭력과 학살 그리고 이것을 뛰어넘어 인간만이 실천할 수 있는 선함이 혼재해 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구원이 가능한가라는 것에 대해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