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을 전혀 가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된다면 인간의 미래는 우연의 손에 맡겨지게 될 것이다. 보다 정확히 힘의 원리에 넘겨지게 될 것이다. 목적론적인 세계관에서 궁극적인 목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선의 계열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되고, 매 순간 사람들의 관심은 자신의 행위가 산출할 일회적인 결과만을 염두에 둘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모든 도덕적인 법칙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 거짓말이나 위선적인 행위라 할지라도 그것이 산출할 일회적인 결과만 좋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선택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갖 부도덕한 일들, 위선적인 일들, 정의롭지 않은 일들이 넘쳐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것을 행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에게 당장 유익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비록 자신의 행위에 대해 처벌 받을 사회적인 법률이 있다 하더라도 ‘법망을 피할 수 있다면’ 그리고 ‘발각될 확률’이 낮다면 언제나 이러한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게 될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읽기>, 이명곤, 세창미디어, 2013, 189-190)
*** 우리의 일상생활과 사회와 국가의 근간이 되는 헌법이 무시되고 짓밟혀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자신들이 갖고 있는 권력(정권)이 위태롭고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지 않기 위한 이유에서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법에 대한 생각은 ‘발각되지만 않는다면, 나의 이익을 위해 법은 어겨도 된다’라는 생각이 아닐까 싶다. 정.재계의 고위 관리와 권력과 재력가들을 위시하여,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속까지 파고 들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고방식으로 우리 사회가 허약해지고 병이 들 수 밖에 없다. ‘나만‘이라는 철저한 이기주의는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권력과 재물이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궁극적인 목표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양도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라면 자기 삶과 목숨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희일비하거나 일회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런 것들로 자기 삶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하느님, 절대자, 절대정신, 절대 선, 양심이라고 부르던 다른 이름으로 부르던, 이 궁극적인 목표(목적)를 회복하는 것에서부터 우리 삶을 새롭게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