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날 갑자기 그녀에게 찾아온 실어증. 열일곱 살이 되는 겨울이었다.어떤 원인도 없었고, 어떤 전조도 없었다. 그때부터 두 귀로 듣지만 두텁고 빽빽한 공기층 같은 침묵이 달팽이관과 두뇌 사이에 생겨 언어 없이 움직여야 했고 언어없이 이해해야 했다. 두 계절 동안의 정신과 치료에서 아무런 차도가 없고,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되어 그녀는 다시 학교로 보내졌다. 이런 그녀에게 다시 언어가 되돌아 온 것은 그해 겨울 불어 수업에서 우연히 듣게 된 비블리오떼끄라는 단어였다. 그런데 이 실어증이 30대 후반(?)인 그녀에게 다시 들이닥친 것이었다.
실어증과 함께 그녀의 모든 삶이 바뀌었다. 실어증을 치료하면서 그 원인을 찾아보려 하지만, 딱히 이것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그녀는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철학자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는데, 자기 존재의 터전과 근거인 언어를 잃어버린 원인을 어떻게 쉽게 찾을 수 있겠는가.
그녀가 언어를 회복하게 되는 것이 비블리오떼끄라는 단어를 우연히 만난 것에서 시작되었듯이, 그와 같은 일이 다시 일이 일어나기를, 가능할 것 같지 않는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수 밖에. 어떤 때는 자기가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이 기다림의 시간에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며,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치유받고, 꿈을 꾸기도 하고 피를 흘리는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안았던 실어증이 그녀에게 찾아온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늘 복음 말씀을 떠오른다.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하느님 아버지만 아신다.“(마르 13,32) 하느님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을 통해 오시거나, 아주 낯익고 평범한 모습으로 오시기 때문에, 쉽게 알아차릴 수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잃어버린 말을 찾게 되는 그날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의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