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순수는 어디에“, 로맹 가리/김남주, 문학동네, 2001
내가 마침내 문명과 그 거짓된 가치들을 뒤로 하고, 물질적인 부에 완전히 경도된 탐욕스러운 세상에서 가능한 멀리 떨어진, 푸른 호수가 있고 바닷속 산호초가 있는 태평양의 어느 섬에 은둔하기로 결심한 것은, 정말 철저한 기질을 지닌 이들만이 문득 부딪치는 그런 이유에서였다. 난 순수에 목말라 있었다. 나는 이익을 위한 싸움과 정신나간 경쟁을 일삼는 분위기, 예술가적 기질과 섬세한 성품을 지닌 나 같은 이들이 정신적 평화를 느끼는데 꼭 필요한 몇몇 물질적인 편의를 조달받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뻔뻔함이 기본이 되는 그런 분위기로부터 벗어날 필요를 느끼고 있던 터였다. 그랬다. 내가 필요로 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무사무욕이었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인 일들을 정리하고 타히티 섬으로 떠났다. 타히티의 주도 파페에테에 문명이 도처에 스며들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마르키즈 제도 중의 이름없는 섬 타라토라에 정착하기로 했다. 그곳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곳이었다. 바다와 산과 나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도 아무런 욕심이 없었다. 나도 그들처럼 살기를 작정하고 내가 싸 가지고 있었던 돈을 마루 한쪽 바닥에 묻어놓았다.
어느 날, 그 섬의 대표 타라통가가 나에게 구운 호두과자를 선물로 보냈다. 선물을 싼 보자기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가로 50센티미터 세로 30센티미터 쯤 되는 포대천으로 된 보자기의 그림은 군데군데 상했고 지웠진 곳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고갱의 그림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가슴이 겉잡을 수 없이 뛰기 시작했지만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며칠 뒤 타라통가의 집으로 갔다. 선물을 더 보내겠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 돌아왔고, 이렇게 하여 포대천에 그려진 고갱의 그림 세 장을 손에 넣게 되었다.
며칠 뒤, 타라통가의 집을 방문하여 그녀의 집 헛간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포대천 그림 열두 개를 얻어왔다. 지난 번 받은 포대천 그림 세 개를 더해 그것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자그만치 3000만 프랑이 넘을 것 같았다. 나는 타라통가에게 프랑스로 가야할 일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타라토라 섬과 그곳 사람들을 위해 쓸 돈이 필요할거라고 말하며, 70만 프랑을 주었고 내가 차고 있었던 손목시계도 주었다.
나는 타히티의 호텔에서 프랑스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타라토라 와 타라통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호텔 주인이 내게 말했다. “대단한 계집이죠.“ 내가 알고 있는 가장 고상하고 순수한 타라통가를 ‘계집’이라고 말한 것에 기분이 상해 있었는데, 호텔 주인이 다시 말했다. ”그 여자가 당신에게도 틀림없이 그림을 보여주었을 텐데요?“ 이어서 타라통가가 이십 년 전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했으며, 지금은 타라토라에서 고갱의 그림을 모사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오스트렐리아의 어느 회사와 정규 계약을 맺은 상태에서.
”순수에 대한 내 끈질긴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정말이지 무인도로 들어가 혼자 살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