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서안시 건현 양산에 있는 당나라 고조 황제의 건릉에는 황제의 비석 옆에 신기하게도 아무 글도 새겨져 있지 않은 비석 하나가 유구한 세월의 풍상을 견디며 우뚝 서 있다. 도대체 누구의 묘비이기에, 아무 비문도 없이, 그것도 중국 황제의 비석과 나란히 서 있을까? 그것은 바로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여자의 몸으로 화제의 자리에 올라 16년 동안 중국 천하를 다스린 측천무후의 비석이다. 그렇다면 그 비석은 왜 그 수수께끼 같은 모습으로 후세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 것일까?
☞ 《측천무후 》(샨사/이상해, 현대문학, 2011), 옮긴이의 글 중에 나온 말이다. 샨사는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측천무후의 비석에 새겨질 그녀의 이야기를 한 권의 소설로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에 비어있는 비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능은 무수한 내전과 외적의 침입을 바라보았다. 더위, 추위 그리고 폭우를 견뎌냈다. 내 이름은 우롱당하고 내 왕조는 잊혔지만, 내 비석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괴롭히는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할 희망을 안고 그곳을 방문했다. 납작하고 매끄러운 내 비석은 벌거벗은 채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다. 어떤 이들은 비문의 부재에서 내 겸허함의 상징을 본다. 내가 후세 사람들에게 비난이나 찬사를 새겨 넣을 수 있는 자유를 주고자 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황제가 된 여자의 오만함의 표현으로 해석한다. 어느 누구도 내 운명을 평할 수 없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말없음이 아주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비어있음이 그냥 비어있음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풍요로움의 자리일 수 있다. 침묵이 한없는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으며, 침묵으로부터 수백만 마디의 말과 글이 나오기도 한다. 예수님의 빈무덤이 부활의 증거가 되고, 그분의 빈무덤을 보고 수많은 사람이 신앙으로 귀의했으며, 빈무덤과 관련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야기과 책과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