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많은 시간이 지났다. 사해와 예루살렘 사이에 있는 유대 광야가 생각난다. 푸른 나무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벌거벗은 바위만 보이는 곳. 바위의 다양하고 현란하고 색상과 다양한 모습에 넋을 잃었다. 황량함만 생각했던 광야의 아름다움이었다. 예언자들과 수행자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머물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였으리라. 눈을 흐리게 하거나 눈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곳. 광야는 어디에든 있다. 늦은 저녁 거의 텅빈 지하철의 광야. 사람이 북적대는 재래시장의 한복판에 홀로 있을 때의 광야. 몰려오는 졸음을 쫒으려고 애를 쓰며 앉아 있는 새벽의 경당. 생명의 말씀이라고 하지만, 그래서 역동성을 기대하고 있지만, 아무런 움직임도 없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말씀 앞에서 광야를 만나다. 피할 수 없기도 하지만 광야의 그런 황량함이 좋다. 이웃에 있는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를 파경꾼처럼 걸으면서 광야를 걷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없는 곳은 광야라 할 수 없다. 아무리 원해도 주어지지 않고,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광야다. 깊어가는 가을 저녁에 광야의 황량함과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