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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의 접촉이 아무리 유익하다고 해도, 우리는 그 효과가 지속되는 시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연 속에서 보낸 사흘의 심리적 영향력이 몇 시간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워즈워스는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았다. 시인은 1790년 가울 알프스 산책 여행에 나선다. 그는 제네바에서 샤무니 골짜기까지 갔다가, 그곳에서 생플롱 고갯길을 넘어 공도 협곡으로 내려가 마기오르 호수에 이르렀다. 그는 누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기가 본 것을 묘사하면서 이렇게 썼다. “이 수많은 풍경들이 내 마음 앞에서 둥둥 떠다니는 지금 이 순간, 내 평생 단 하루라도 이 이미지들로부터 행복을 얻지 못하고 지나가는 일을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큰 기쁨이 밀려온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수십 년 뒤에도 알프스는 계속 워즈워스 안에서 살아남아, 기억 속에서 그곳을 불러낼 때마다 그의 영혼은 힘을 얻었다. 그는 자연 속의 이러한 경험을 “시간의 점”이라고 불렀다. “우리의 삶에는 시간의 점이 있다. 이 선명하게 두드러지는 점에는 재생의 힘이 있어... 이 힘으로 우리를 파고들어 우리가 높이 있을 땐 높이 오를 수 있게 하며 떨어졌을 때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209-210)
*** 워즈워스가 말한 “시간의 점”은 심리학자 매슬로우가 말하는 “절정 체험 peak experience"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살아있는 사람의 체험이기 때문에 주관성을 띨 수밖에 없지만,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수준의 체험으로 그의 몸과 마음과 영혼에 각인되어 그의 삶 전체에 강력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공통된 특징도 있다.
우리는 살면서 가끔 이런 체험을 한다. 자연의 웅장함 앞에서, 평범한 일상생활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항구하고 겸손된 기도생활 안에서...
이 체험은 또 다른 특징은 그것이 그냥 주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그 체험 이전에 그의 땀과 노력과 열정과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지만, 이런 인간적인 노력에 비해 그 체험이 너무 크고 강렬하기 때문에 그가 쏟았부었던 것들이 모두 하찮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체험이 시간안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날짜와 시간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시간안에서 그냥 주어지는, “시간의 점”, “절정 체험”이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에 새기고 기억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대로 들어나는 성경 구절을 하나 말한다면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요한 1, 39)의 말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