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합니다. 얇고 달달한 책을 선호하며, 원전이 아니라 요약본을 즐겨 읽고, 책보다 영상매체에 몰두한다고 걱정합니다. 그렇지만 책만 있으면 좋은 사람, 책을 통해 기쁨과 위로를 얻고 책을 읽으며 힘든 일을 이겨 나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 중 몇 사람과 함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었습니다.
7백 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과학책이죠. 과학책답게 흥미진진했고 호기심을 일으키는 이야기가 많아 정신이 활성화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과학책이지만 아름다운 시나 산문을 읽는 듯했습니다. 인간의 역사와 우주와 물질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묵상한 것을 유려한 문체로 풀어낼 수 있었던 칼 세이건의 뛰어난 재능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코스모스』를 읽은 사람은 칼이 만든 우주 달력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주의 역사 137억 년을 1년으로 환산하여 만든 달력이고, 우주의 시작을 1월 1일 0시, 현재 시점을 12월 31일 밤 12시라고 생각하여 만든 것입니다. 이 우주 달력에 새겨질 사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주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는 1월 24일에 첫 번째 은하가 등장합니다. 우리 태양계는 가을이 시작되는 9월 9일, 지구는 지금부터 46억 년 전 9월 14일에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지구에 첫 생명체가 탄생한 것은 38억 년 전 9월 30일 무렵입니다. 지구생명체의 진화가 계속되어 인류가 등장한 것은 한 해가 다 저물어가는 12월 31일 밤 10시 30분입니다. 부처님과 예수님은 12월 31일 밤 11시 59분 55초와 56초에 태어나셨습니다. 이란성 쌍둥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죠.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습니다.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의 짧은 시간 안에서 칼은 자신과 자신의 아내 앤이 몇십 년을 함께 살고 있다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코스모스』 맨 앞에 이렇게 썼습니다. “광막한 공간과 영겁의 시간 안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이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 얼마나 멋진 사랑의 고백입니까. 남편 칼로부터 이런 사랑의 고백을 듣고 『코스모스』라는 멋진 책에 대한 헌사를 받은 앤이 얼마나 행복했을까 생각하니 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칼은 앤과 자신의 만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기도 했습니다. “다시 이 빛나는 창백한 푸른 점을 보라. 바로 여기가 우리 집, 우리 자신인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아는 사람, 소문으로 들었던 사람. 그 모든 사람이 그 푸른 점 위에 있거나, 또는 있었던 사람들이다. … 인류 역사의 총합이 그 창백한 푸른 점에 있으며, 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와 같은 작은 천체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저는 『코스모스』를 읽으면서 천문학자들이 말하는 별과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별 사이에 차이가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른 저녁 혹은 새벽녘에 볼 수 있는 유난히 밝은 샛별과 차고지기를 반복하는 달과 제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모두 별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반짝이는 모든 것을 별이라고 부르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천문학자들은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을 별이라고 하여, 항성의 빛을 반사하여 빛나는 행성 등과 구별한답니다. 항성이 되었든행성이 되었든별과 관계되는 이야기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성경에도 별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하느님께서 하늘에 큰 빛 물체 두 개를 만드신 다음 별들을 만드셨고, 아브라함에게 너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욥의 친구는 아침 별들이 환성을 지르고 하느님의 아들들이 환호할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고 욥을 몰아세우고, 시편 저자는 달과 별들을 굳건히 세우신 하느님이신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시나이까 라고 놀라워하고, 신탁을 받은 발라암은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고 축복합니다. 즈카르야는 하느님의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되어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기리며,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이 태어난 곳을 알려주는 별을 따라와서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고, 바오로 사도께서는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을 내며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많은 별 이야기 중에 저와 관련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지금은 별 보기가 힘든 서울 한복판에 살고 있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언제든지 별을 볼 수 있는 강원도 깊은 산골 피정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살 때 가끔 한밤중에 일어났습니다. 발소리를 죽여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하늘이 널따랗게 열린 마당에 서면, 서늘한 밤공기가 온몸에 와 닿았습니다. 어두운 하늘에 수없이 많은 별이 보였습니다. 별들이 쏟아진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침묵 속에 그냥 서 있다가 다시 돌아와 잠을 청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별과 초롱초롱한 별들, 밤의 고요함과 침묵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간직한 채.
이런 마음 때문에 한 번은 그곳에 오신 피정자들과 함께 늦은 밤에 수도원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별은 누워서 봐야 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미리 준비한 깔판 위에 모두 누웠습니다. 누워있는 우리 위로 널따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별들이 보였습니다. 누워서 알퐁스 도데의 “별” 이야기를 했고, 별에 관한 시를 들었습니다. ‘별을 쳐다보면 가고 싶다, 어두워야 빛나는 그 별에 셋방을 하나 얻고 싶다. 밤하늘에 긴 금이 갔다, 너 때문이다, 밤새도록 꿈꾸는 너 때문이다’라는 시를 노래했습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어머니 등,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라는 시를 가져와 각자의 별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김광섭의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했습니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할 일이 별로 없는 사람들의 별 볼 일 없는 이야기, 별난 이야기와 별수 없는 이야기, 별것 아니지만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이야기. 말 그대로 별의별 이야기를 하며 밤을 보냈습니다.
사람이 외로운 것은 정다운 별 하나가 없기 때문입니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이 세상을 살아볼 만한 곳으로 여기며 사는 것은 어둠을 밝혀줄 별을 찾으리라는 기대와 희망 때문입니다. 자랑할 것 없고 내 새울 것 없어도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것은 그런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숨은 별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별에 대한 이런 그리움을 아시고 하느님께서는 별이 되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별처럼 많고 많은 다양한 모습으로 매 순간 우리에게 오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인데, 우리에게 주어지고 살아야 할 이 시간 안에서 마음껏 사랑하다, 하늘로 올라가 다른 사람을 비추는 하나의 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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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교원 도미니코 사비오
예수고난회 신부이다. 우리 생활과 생태계의 급속한 변화로 별 보기가 힘든 때에 사람들이 자주 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찾고 별을 노래하며 살기를 바라며 살고 있다. (2023년 8월, <경향잡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