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글을 쓰는 나는 누구인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가? 이 숲속에 있는 동안엔 카말돌리회 생각도, 이곳에서는 존재에 대한 물음도 어떤 곳에 대한 갈망도 다 사라져 버린다. 이 고요가 고독으로 부르는 내 성소를 확인해 주는 것임을 깨닫는다. ... 이 글을 쓰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다. 부단한 글쓰기는 작가의 영적 성장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 이는 한 인간을 작가가 아닌 다른 존재로 성장하게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바로 그러기에 변화가 필요하다. 지난 37년 동안 나는 수도자라기보다 글을 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비록 하느님의 은총으로 주어진 일이라 해도 결과는 허무한 것이었다. 왜 글을 쓰는 것이 옳은지 묻지 말고 그냥 글을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토마스 머튼의 시간>, 1952년 9월 15일; 9월 26일; 10월 22일)
*** 외적 환경, 머무르고 있는 곳이 고요하다고 하여 마음까지 고요한 것은 아니다. 자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과 현실의 자기가 일치할 때 고요하게 머물 수 있다. 자기 생각에 매여있지 않을 때 자유롭다. 모순되고 이율배반적인 자기 모습이 밝혀지지 않을 때에는 그런대로 고유하게 머물 수 있다. 자기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가지 얼키고설킨 감정과 느낌을알아차리고, 비참함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그런 상태에 있는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라고 주님께 기도할 때 고요하게 머물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자기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자기가 자기에게 벌을 내리기를 바라는 분이 아니시다. 성경 어딘가에 벌을 내리시려다가도 쉬이 멈추시는 하느님이라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산속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머물고 싶다. 정신과 영혼뿐 아니라 육과 더불어 있는 이런 갈망이 채워질 때 더 깊은 고요안에 머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