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고통에 대해 쓴 내 시가 모두 적절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 시들은 어떤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위장했을 뿐이다. 고통과 죄에 대해 제대로 쓴 시를 쓰고자 하는 갈망은 또 다른 유혹일 뿐이다. 나는 고통과 죄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글쓰는 일은 영적 완덕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 방해가 아닌 완덕을 이루는 조건 같다. 나는 모든 수도자가 성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으로 한 사람의 수도자로 삶에서 이루고자 했던 것을 글로 남겨야 하리라. 단순한 일 같지만 쉬운 소명은 아니다.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좋은 수도자가 되어 그것에 대해 글을 써야 할 것이다. 온전히 단순하고 성실하게 아무런 꾸밈도 없이 문제를 혼동하지 않고 나 자신에 대해 써내려가야 한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과장이나 반복, 필요없는 강조를 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 변명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자신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는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다. 극적이거나 고통스럽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본성을 뛰어넘는 정직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성령의 힘에서 나와야 한다. 결과가 온전하고 거룩하게 투명하려면 성령께서 이끄시는 빛안에서 살고 기도하며 글을 써야 한다. (<토마스 머튼의 시간>, 1949년 9월 1일)
☞ 솔직하게 쓴다. 진솔하게 쓴다. 있는 그대로 쓴다. 외둘러 쓰지 않는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신분뒤로 숨지 않는다. 자서전적인 글을 쓸 때 갖고 있어야 할 기본자세다. 문제는 자기 삶과 다른 사람의 삶이 함께 엮여져 있을 때이다.
공동체 생활에 대해서 쓸 때, 자기 약함을 그대로 쓰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 일과 관련된 사람에 대해 쓸 때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쓴다는 것은 대부분 어떤 일과 어떤 사람에 대해 쓴다는 것인데, 자기와 관련된 사람에 대해 비난하지 않고 편견없이 있는 냉정하고 평온한 상태에서 글을 쓴다면, 교훈적인 글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살아있는 글로 되기 어렵다. 이렇게 쓰여진 글을 읽는 사람은 뭔가 쓰긴 썼는데 논점과 핵심이 또렷하지 않고, 게걸음처럼 삐딱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토마스 머튼이 쓴 <명상의 씨>에 대해 수도원에서 영적독서로 읽었는데, 이 책에 대해 “자신이 지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그 책을 좋아한다네”라고 이야기한 동료 수도자가 있었다.
토마스 머튼의 쓴 책들이 대부분 지적이고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경향이 있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일기>로 쓰여진 것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가끔 나오는데, 앞뒤 정황을 살펴보게 되면, 그 일이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것을 감안하면서 머튼이 쓴 일기를 읽어나간다면, 위에서 그가 쓴 내용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