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작품이 ‘자전적 소설’이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쓴 책을 읽게 되면 그가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어떤 궤적을 그리며 살았을지 아주 상세하게 재구성할 수 있을 정도이다. 심지어 그의 생각과 그의 마음과 몸속에서 일어났던 일을 기술한 것을 보면서 내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 알 수 있다.
이런 글쓰기 형태가 쉬울 것처럼 보이지만, 얼마나 어려운지는 우리가 일기를 쓸 때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기 껄끄러운 일에 대해서는 미화하려 하거나 완화시키거나 부드럽게 쓰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니 에르노와 비슷하게 글을 쓴 사람의 책을 요새 읽고 있다. 토마스 머튼의 <칠층산>과 <시간>이다. 원본을 다시 읽는 것이 아니라, 전에 읽으면서 요약한 것을 훑어보고 있지만.
요약된 것이지만, 몇 년 전 읽었을 때와 똑같이 감동적인 내용이 많다. 깊게 새기고 싶은 내용도 많고, 이런 내용도 있었나라고 놀라거나, ‘이런 의미였구나’라고 새롭게 알게 되는 내용도 많이 있다. 머튼은 매일 자신이 했던 일과 행사와 사건에 대해서 뿐 아니라 그것에 대한 느낌과 생각과 묵상과 기도와 이들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응답했는지에 대해 솔직하게 썼다. 다른 사람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면 자신의 신분과 명성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 적었다는 말이다. 이런 글쓰기기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일기를 쓰면서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절대 알려지지 않고, 자기만이 알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자기가 쓰고 있는 일기가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던 머튼이 이렇게 소박한 생각은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머튼은 자기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쓸 때, 왜곡하거나 꾸미지 않고, 변명하거나 합리와 시키거나 미화시키거나 축소시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썼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머튼과 아니 에르노의 고백적인 글쓰기 형태를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형태의 글쓰기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까지 거슬러 올라간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