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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여자아이는 내가 아니지만 허구가 아니다 ... 오늘의 나라는 여자가 아니라, 1958년 여름의 그 여자아이가 ... 다른 누구도 그녀만큼 내 기억을 채우고 있지 않다. 사진 속 여자아이는 자신의 기억을 내게 물려준 낯선 사람이다 ... 50년이란 세월의 간극에도 갑자기 나타나, 마음을 와해시켜버리고 마는 1958년의 그 여자아이는 그러니까 내 안에 숨은 채 확고부동하게 존재하고 있다. 만약 실재라는 것이 사전이 정의하듯, 작용하고 어떤 결과를 낳는 것이라면, 이 여자아이는 내가 아니지만 내 안에서 실재다. 일종의 실재하는 현존. (<여자아이 기억>, 21.22.23)
☞ 나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도 영향을 주는 어떤 것. 이처럼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서 '현존'이라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하느님의 현존과 같은, 현존하시는 하느님. 더 나아가 '그분'의 눈으로 보고 '그분'처럼 듣고 '그분'처럼 행동하고 살려고 함. '그분'을 붙잡고 싶어하고, '그분'께 사로잡히기를 바라고 것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그래서 '그분'께서 가시덤불속에서 모세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셨으며(탈출 3,5), 영광스러이 변화되신 주님을 보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두려워했던 것이다(마태 17,5). 내 삶에서 '현존'했던 것과 대면하기 위해, 용기가가 필요하고 자기 존재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위험을 각오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