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 계곡의 겨울 나무들. 움직이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고, 소리를 내지 않는다. 가끔 까악 까악하는 소리만 들린다. 아침 연하게 붉은 색이 산봉우리에서 계곡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것이 보인다. 계곡에서 부터 시작된 어둠이 산봉우리에 붉은 빛을 밀어내면서 겨울밤이 시작된다.
몇 십년 전 수련기 때, 무슨 이유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바로 이곳에서 제법 오랫동한 지냈다. 계곡 유원지에서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올라오는 노랫소리를 들었고, 가끔 고기굽는 냄새도 맡았다.
다시 그 자리에 있다. 그리고 다시 떠난다. 떠남은 단절이다. 단절이 크고 넒고 깊을수록 혼란스럽고 고통스럽다. 단절을 스스로 감행할 수 있는 것은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과 어떤 기대감과 막연한 확신과 자신감 때문이다. 이런 내적인 요인과 내적 동기와 열망과 열정이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하는 일들때문에 파묻힌다. 다른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보면서, ‘혹 내가 찾아 떠났던 것이 헛것이었을까’라는 심각한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그 사람 나름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그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서, 그가 투신하고 싶고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서 살아간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살고, 나는 나대로 산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소명에 따라 살기에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소명, 사명, 해야 할 일.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하고 있는 일들 모두가 주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이다. 그것을 하면서, 그렇게 살면서, 나는 행복해진다. 그렇게 믿으며 이곳 우이동 계곡으로 찾아왔던 그 시간과 때를 기억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82년 가을 이곳에서 며칠 지낸 다음, 대구로 내려갔던 오후가 생각난다. 이름하여 ‘성소 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