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새삼하게 된다.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있는가? 누구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가 등의 질문을 한다. 일상에서 하는 이런 일들이 나를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은 사물이 아니다. 한순간도 멈추어 본 적이 없다. 여행하면서 몇 번 졸도한 때를 제외하면. 이런 '나'는 왜 날마다 뭔가 끄적거리고 있는가? 무료한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지금까지 무료하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글쓰는 것이 재미있어서? 이보다 재미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기도하기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침묵안에 고요히 머무는 것인데, 글을 쓰는 순간은 결코 침묵하는 시간이 아니다. 어떤 책을 읽고 그 책과 저자와 대화한 것을 기록하기 위해서? 그 저자와 내적으로 깊이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저자가 사유하고 저자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에 공감하면서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을 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하얀 종이 혹은 모니터에 내 생각이 활자로 변호되는 것이 멋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기 어려운 내면의 어둠을 어떻게든 표현하면서 해방감을 느껴 보려고? 그래서 은유를 사용하고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 이야기하듯이 해보려고? 이외에도 글을 쓰는 이유를 찾아보면 많이 있을 것이다. 내 스스로 한 생각이든,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옮겨 적든. 글쓰는 이유를 묻는다는 것이 '왜 삽니까'라는 질문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는 이유를 한두 마디로 표현할 수 없고 상황에 따라 달리 답변하듯이, 글쓰기의 이유 또한 한두 가지로 규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글을 써서 밥 벌어먹을 것도 아니고, 책을 낼 것도 아니고, 어떤 대상에게 쓰는 것도 아닌데, 왜 쓰는 거야? 답이 없을 질문을 하면서, 뭔가 쓰고 있다.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