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살이생활글/생활 속에서 2022. 10. 18. 20:36
며칠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데이터 센터에서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휴대폰에서 접속할 수가 없었다. 해야 할 일 때문에 바쁘기도 했지만, 그러려니 하며 지냈다.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상상할 때가 있다. 가장 먼저 인터넷과 관련된 건물이 폭격을 받게 될 것 같다. 지금까지 신속하고 편안했던 생활이 아수라장으로 변할 것이다. 한방에 '훅'가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영원할 것처럼.
어제 춘천에서 손님이 왔다 가셨다. 사과대추를 수확하셨다고 갖고 오셨다. 대추 알맹이가 작은 사과만큼 컸다. 달고 사각퍼석하면서 아무 맛있었다. 바깥어른이 손재주가 좋아 소품들을 많이 만들고 계시는데, 당신이 만드신 것 중에서 몇 개를 갖고 오셨다. '우드블록'과 '십자가'와 '종이테이프로 만든 공'이었다. 새까맣고 아주 단단한 나무로 만든 작은 십자가가 마음에 들었다. 기계작업은 최소로 하시고 대부분 수작업으로 하셨기 때문에 한눈에 보아도 고급스럽게 보였다. 많이 만들 수만 있다면 성물가게에서 판매해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옆에 살고 있는 수녀님들께 넌지시 이야기해 보아야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했고.
어제오늘 도서관 작업을 했다. 새로 들어온 책을 분류하고 라벨을 붙이고, 서가에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애기가 태어나면 가족들의 생활이 바뀌듯, 새 책들이 들어오면서 기존의 책들이 자리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4년 전에 봉사했던 분들이 다시 오셨다. 경험자들이고, 정리해야 할 책이 많이 않아 빨리 끝냈다. 큰 짐은 아니지만, 미루고 미루었던 일을 마쳐 홀가분하다.
<창립자 편지>가 출간되어 배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로부터 축하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좋고, 왜 기뻐하는지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있어 좋다. 창립자에 대한 빚을 조금이라도 갚은 것처럼 생각되어 마음이 놓인다. 그분께서도 좋아하실 것이다. 3백 년 전에 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분에 관한 책들을 더 많이 번역해야 할 것이다.
해가 짧아졌다. 저녁기도를 시작할 때부터 어둡다. 저녁식사 후에 밖으로 나가면 암흑이다. 달빛은 보이지 않는다. 별들만 보인다. 되돌아 가고 싶은 곳이 있고, 되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있다. 이런 기억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한다. 초겨울 같은 가을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