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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막, 그곳에서는 말야, 사람들이 며칠을 걸어도 집 한 채 보이지 않고 우물 하나도 발견할 수 없을 때가 있단다. 사막은 너무 광막해서 아무도 사막을 전부 샅샅이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막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마치 바다 위에 뜬 배에 타고 있는 것과도 같아서 언제 다시 돌아올지 아무도 알 수 없어. 어떤 때는 폭풍우가 몰아치기도 하지, 그렇지만 이곳 같지 않아. 그 사막의 폭풍우는 정말 굉장하단다. 바람이 모래를 잡아채서는 하늘 위로 흩뿌려 던져놓는단다. 그러면 사람들은 길을 잃게 되고 모래 속에 빠져 죽어. 폭풍을 만난 배들처럼 길을 잃고 죽는 거야. 그러면 그들의 시체는 모래 속에 고이 파묻힌단다. 그 나라에는 모든 것이 그렇게 다를 수가 없어. 태양도 이곳 태양과 똑같지 않아. 더욱더 강렬하게 타올라서 어떤 남자들은 얼굴을 데고 눈이 멀어서 돌아오기도 한단다. 밤이 되면 너무나 추워서 길 잃은 사람들은 괴로워서 비명을 지를 정도야.
(<사막>, 르 클레지오/홍상희, 문학동네, 2008, 188)☞ 한때는 사막에서 살기를 원했다. 그곳에서 몇 달 만이라도 머물기를 원했다. 막연한 동경이었던가? 마음속 무엇이 있어 그런 동경을 하게 되었던가, 생각한다. 철저하게 혼자이고 싶었고, 철저하게 부서지고, 처절한 심정으로 무엇인가 찾고 싶었던 갈망이었으리라.
'한때'라고 말했지만, 지금 사막에 대한 동경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사막에 대한 두려움이 그 동경을 지그시 누르고 있을 뿐이다. 사막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하지만, 몸과 마음속에 있는 모든 두려움이 그렇게 표현된 것뿐이다. 무엇이 두려운가? 변화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도 변화되어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것들만 주어지기를 바라지만 세상의 평범한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이 현실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 두려워하고, 미지의 세계를 바라지만 완전한 미지의 세계인 죽음이라는 어둠으로 인도하는 삶의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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